Korean Med Educ Rev > Volume 12(2); 2010 > Article
의학교육에서 자기주도학습원리를 통한 배움의 용기 고찰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propose an alternative viewpoint on medical education, known as the Erudition paradigm. This study aims to confirm the essence of erudition rather than teaching and learning through discussing the foundations of self-directed learning principles in medical education. By reactivating the meaning of self-directed learning, this study debates the proprieties of the erudition paradigm beyond pedagogy; that is to say, the school-oriented educational paradigm. After all, this study reveals that all humans are Homo Eruditio, born with an erudite instinct, and it is necessary to inspire his/her encouragement in erudition by using self-directed learning.

서 론:교육의 본질에 관한 질문

1st Question: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르치고(敎) 기르는(育) 일로 표현되는 교육(敎育, education)의 중핵에는 교수 (teaching)와 학습(learning)이 있다는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의 중핵을 이루는 ‘교수-학습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육의 3요소로 이야기되는 교수자, 학습자, 교과내용의 상호 연관성이 높으면 교수-학습이 원활이 이루어진 것이고, 그러면 교육이 잘 진행된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2nd Question: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수자가 교과내용을 잘 전달하기만 하면 교육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학습자가 교과내용을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교육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잘 전달하고 잘 받아들이기’ 위한 교육의 방법은 그 목적에 부합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용인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3rd Question: ‘교육의 주체’ 는 누구인가? 교육의 3요소 중에서 교과내용이 주체는 아니라고 볼 때, 교수자가 주체가 되든지 아니면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주체는 교수자인지, 학습자인지, 아니면 이 두 존재 모두 다인지 질문하게 된다.
위에 제기된 세 가지는 적어도 교육과 관계하고 있는 존재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은 교육을 학문적으로 처음 접하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이고, 현장에서 교육을 실천해오고 있는 학자와 실천가들에게도 유의미한 질문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호흡하는 모든 인간 존재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배움 본성을 타고난 인간인 호모 에루디티오 (Homo Eruditio) 스스로가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한준상, 1999). 상호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 통(通)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터득하고 마련해 가는 것이다(김성길, 2009). 이러한 장(場)을 마련하는 것은 역시 교수자의 책임일 것이다.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도 역시 이러한 장을 의사가 만들어야 하므로 이는 의학교육에서 실행되어져야 하는 중요한 교육과정이 된다(이승희, 2009).
최근 문제중심학습(problem-based learning), 자기조절학습 (self-regulated learning),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 등의 용어들이 각광 받고 있다. 특히 자기주도학습은 새로운 입시정책 중 하나인 입학사정관제와 자기주도학습전형의 도입과 함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나서서 <자기주도학습전형 바로알기> 등과 같은 자료집을 발간하는 상황 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만큼 자기주도성이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의사와 환자 간에, 또는 의사와 의사 간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의학교육 분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연구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자기주도학습의 기본 개념을 정리하고, 이러한 자기주도학습의 원리에 바탕을 둔 배움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의학교육 측면에의 시사점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평생교육시대의 자기주도학습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 엄밀히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도 이제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생각이 되었다. 교수자와 학습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평생토록 자신의 학습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평생학습자이자 지식의 생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평생학습자라는 인간관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인식의 틀이 되었다. 평생학습사회가 구축되기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국민 각자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학습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주도적으로 학습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평생학습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한순미, 2004).”
가르치기만 하면 배우는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열린교육 평생학습 시대에는 배움의 목표에서부터 내용, 방법,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학습자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창조적 교육과정이 필수적이다. 평생학습사회는 발생한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데 급급해하는 수동적 대응적 문제 해결사회라기보다는 문제 발생 이전에 문제 상황을 예측하고 그 원인을 발굴하여 해결방안을 창안해내는 능동적 창발적 문제유추사회라고 할 수 있다. 급속한 환경 변화 속도를 기존의 교육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감당해 낼 수 없기에 교육의 주체들 스스로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방안을 구안하도 록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평생학습사회의 핵심인 자기주도학습은 그 의미를 목표에 두는지, 과정에 두는지, 또는 목표와 과정의 통합에 두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을 제기한다. 첫째로, Brookfield(1985)는 자기주도학습을 하나의 목표로 바라본다. 다시 말해서, 자기주도학습은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학습자의 특징적 학습방식의 하나로서, 학습과정의 결과로 기대되는 자기주도학습 능력과 학습자 내면의 의식변화’ 로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로, Knowles(1975) 와 Long 등(1988)은 자기주도학습을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가 교수자 혹은 외부 인의 도움에 관계없이 스스로 주도권을 지니고 학습의 필요성 진단, 목표 설정,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 확보, 적절한 학습 전략 선택 및 적용, 최종적인 학습 결과 평가를 실행하는 과정’ 이며, ‘학습자 스스로의 통제와 관리에 따라 학습상황에 집중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교?대조하는 등의 메타인지행동의 과정’ 으로 파악하고 있다. 셋째로, Candy(1991)는 자기주도학습을 목표 이자 과정으로 바라보고, ‘학습자가 스스로의 학습과정에 주도 적으로 참여하여 계획하고 실천하는 자율적 결정 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러한 자기관리능력의 향상을 위해 교수-학습 과정에 학습자의 주도권을 증진시키는 훈련 과정을 포함’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Merriam, Caffarella, & Baumgartner(2007)는 자기주도학습의 목표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첫째로, 학습자들이 학습에 있어서 주도적이 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둘째로, 학습자의 관점전환이 자기주도학습의 중심이 되도록 촉진하는 것, 셋째로, 사회실천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이 가운데서 대부분의 자기주도학습 연구는 첫 번째 목표인 학습자의 자기주도력 함양에 관한 내용을 주로 하고 있으며, 여기서 교수자가 할 일은 일정 부분 학습자들이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러한 자기주도학습력 증진의 목표는 초등교육에서 시작해서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전문가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의학교육에 있어서 자기주도학습에 관한 국내연구는 윤소정 등(2007)의 연구와 천경희 등(2010)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윤소정 등(2007)은 의과대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 간의 학습성향 차이를 학습접근방식, 비판적 사고성향, 자기주도학습준비도 측면에서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 의학전문대학원생이 의과대학생들에 비해 보다 심층적 학습접근, 학습모니터일과 노력관리 및 학습조직화를 잘하고, 비판적 사고성향과 자기주도학습 준비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천경희 등(2010)은 의과대학에서의 교육풍토, 자기주도학습, 창의적 사고 등에 대해 의과대학생과 공과대학생을 비교 분석하였으며, 특히 자기주도학습 태도를 학습에 대한 애정, 학습 및 과제에 대한 효능감, 독창성과 새로움 추구, 자신에 대한 긍정적 기대, 학습에 대한 자기성찰, 학습에 있어서의 자율성 등 여섯 영역으로 구분하여 비교하였 는데, 그 결과 의과대학생의 평균이 공과대학생의 평균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의학교육 영역에서는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싹트기 시작하는 태동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자기주도학습의 활용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자기주도학습의 효익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 스스로가 학습의 참여 여부에서부터 목표설정 및 프로그램의 선정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학습형태를 말한다. 즉, 자기주도학습은 학습목표의 설정, 학습자원의 확인, 학습전략의 선택, 학습결과의 평가와 자기성찰 등의 일련의 과정을 학습자 스스로 동기를 발견하고 지속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최성우 ₩김판수, 2010).”

1. 동기부여(motivation) 증진

일반적으로 동기(motive)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주도적으로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내적 동기가 마련된 학습자는 새로운 사안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고 주의력과 자기효능감이 높다. 학습에 대한 의욕이 높고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배움에의 욕구를 드러내게 된다.
서머힐(Summer Hill)의 창시자 닐(A. S. Neil)은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학교’ 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서머힐을 열었다(대교, 2010). 서머힐은 닐의 자기주도학습 교육철학이 온전히 배어있는 배움의 장(場)이다. 학습자에 대한 철저한 자유와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배려가 학습자로 하여금 그 무엇인가 새롭게 도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된다.
“부모들의 지나친 불안은 어린이의 건강을 해치는 한 원인이 된다. 이런 불안이 자식은 아버지보다 더 출세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소원 속에서 나타나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런 아버지는 그의 자식이 배우고 싶을 때 읽기를 배운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그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으면 건달이 될 것이라고 겁을 내고 있다. 그는 아이가 스스로의 속도대로 전진하는 것을 지켜 볼 만큼의 참을성이 없다.” 만약에 내 아들이 열두 살이나 되어서도 글을 읽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애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만약에 열여덟 살에 대학입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그는 무식한 노동자 밖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와 반대로 참고 기다리면서 한 어린이가 조금씩 발전하거나 전혀 발전을 못하는 것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어린애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면 마침내는 인생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A. S. 닐, 2003).’
닐의 교육방침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자신에 관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게 함으로써 학습자 스스로 내적 동기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닐은 학습자들이 선택한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서는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요시 했다. 실제로 학습자 자신의 동기를 발휘하여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둘째는, 학습자들과 대화할 때 학습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이며 발전 가능성을 가진 잠재적 존재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학습자 자신이 느끼는 행복, 성실함, 조화로운 인간관계, 자유로운 심성을 형성하는 것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자기결정력을 높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증진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기대와 내적 동기의 함양은 평생학 습시대의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기본 역량이라 할 수 있다.

2. 도제정신(apprenticeship) 확충

“최고의 교수들은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학생과의 ‘소통’ 을 뽑는다. 수업이란 교수자와 학습자간의 소통과정이므로, 교수와 학생이 소통만 잘 한다면 그 수업은 대체로 성공적이다. 교수와 학생간의 소통은 수업 시간에 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 소통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소통이란 개인적인 교류에서 시작된다. 교수와 학생이 개인적인 교류를 이루기란 그리 쉽지 않다. 쉽게 건널 수 없는 깊고 넓은 강이 교수와 학생 사이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이의용, 2010).”
공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유비쿼터스 러닝(ubiquitous learning), 모바일 러닝(mobile learning) 등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확산은 교수-학습의 장소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교육을 제안 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대면 교수-학습 장면이 요구되는 분야가 있다. 인간을 대하는 교육 분야가 그러하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의학교육 영역은 더욱 더 그러하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 분야에서는 첨단 기계와 공학기술의 발달에만 의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의술(醫術)이 곧 인술 (仁術)’ 인 의학 분야는 말 그대로 장인정신과 소명의식이 필수다. 그런 측면에서, 도제는 숙련된 기술의 습득뿐만 아니라 전문 가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를 함양할 수 있는 유의미한 교수-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공학시대에 도제정신을 언급하는 것이 마치 시대착오적인 낡은 교육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도 제제도는 근대 서구 학교교육제도와는 달리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고 지금도 다양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안주영, 2009). Lave & Wenger(1991)는 실행공동체의 상황학습을 설명하면서 도제제도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말하자면, 도제의 상황 학습과 합법적 참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존 교육에서 탈맥락화된 지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있다 (전평국₩박성선, 2002; 안주영, 2009). Coy(1989) 또한 장기간에 걸친 관찰과 참여와 경험의 공유를 통해 함축적 지식의 습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지식은 기능(craft)과 관련한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장인과 도제 사이의 인간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relationship)를 구조화하는 방법과 관련이 된다(안주영, 2009).
장인(master)과 도제(apprentice)와의 관계는 교수자와 학습 자와의 관계로 대치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인간적 사회적 관계와 경험의 공유는 교수(teaching)라는 원인변인에 의한 학습 (learning)이라는 결과변인으로의 일차원적 단편적 수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김성길, 2010). 오히려 학습자 스스로 ‘어깨 넘어 배움’ 을 ‘그저 시도(just do it)’ 해 보는데 도제정신의 활용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교수작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자 스스로 배움의 넓이와 깊이를 깨달아가는 보다 고차원적이고 다층적인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은 기본적으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성격을 지닌다. 도제정신이 온전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교수자의 기다림이 절실하다. 즉각적이고 대증적이고 결과지향적인 조급함으로는 큰 그릇을 이루어내기가 요원하다. 자기주도학습은 기다릴 줄 아는 교수자와 무모하지만 도전해보는 학습자 사이의 끊임없는 의식소통 (inter-experience)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3. 가르침보다 서로 배움 지향

“좋은 교육이란 유창한 말솜씨로 잘 가르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말로 가르치기’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널리 퍼져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고정관념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교수자가 학습자에게 지식을 전달할 때 주로 말로 가르치므로 이 표현이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이처럼 검증되지 않는 믿음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핀켈, 2010).”
지금껏 교육을 교수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가르치는 일이고, 학습자 입장에서 이해하면 배우는 일이라고 구분하곤 했다. 교육학의 중핵을 교수-학습으로 여겨왔고, 그 속에서 학습(learning) 은 교수(teaching)의 결과물로 치부되어 ‘가르치면 배운다’ 는 식의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인식에 사로잡혀왔다(김성길, 2010). 이런 이분법적인 구별짓기는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에 간극을 넓히고 벽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교육문제는 나날이 산적해 가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대책 없이 시대 반복적이고 임기응변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교사가 되기를 좋아하는 결점이 있다(孟子曰人之患在好爲人師)’ 는 맹자(孟子)의 지적처 럼, 배우기보다 가르치기를 우선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움(erudition)은 ‘좋은 교육’ 이다. 좋은 교육은 그 어떤 타자 (他者)에게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 (핀켈, 2010). 우선, 좋은 교육에서 ‘타자’ 는 반드시 교수자라는 인간 존재여야만 할 필요가 없다. 학습자 주변의 환경 모두가 타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은 자연(Nature)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자연(自然)스러운 일인 것이다. 또한, 좋은 교육에서 배우는 지식(knowledge)은 단순한 자료(data)나 정보조각 (information)의 총합이라기보다는 교수자와 학습자 각자의 ‘생각의 사고(thought about thinking)’ 로서(한준상, 2009) 지혜 (wisdom)까지를 망라한다. 그리고, 좋은 교육에서 ‘만드는’ 상황은 ‘만들어지기’ 도 하고 ‘만들어내기’ 도 한다. 외부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내부에서 자기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상황도 있다. 평생학습시대에 자기주도학습 이 중요한 이유는 외부의 자극에 의한 반응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학습자와 교수자 모두의 주체적 자율성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조각능력(selfsculpting) 이 곧 창의력(創意力)이고 창조력(創造力)이며 창발력 (創發力)인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은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독단적인 학습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기주도학습은 교수자의 교수활동(teaching)보다는 학습자의 학습활동(learning)을 우선시 하며, 나아가서 교수 자와 학습자 모두의 배움활동(erudition)을 가장 중요시 한다. 다시 말해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각각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교수 자면서 동시에 학습자고 학습자면서 동시에 교수자인 ‘교수학 습자’, ‘학습교수자’ 로서 모두가 배움의 본능을 타고난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임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이다.

결 론:배우려는 용기

“의학이 종합학문으로서 모든 학문분야를 포괄하고 응용하듯이 의학교육도 일반 교육학의 원론적 분류에 속하는 모든 분야를 포괄하면서 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의학교육은 의사라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으면서도 그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능력, 태도 등을 갖춰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이승희, 2009).“
교육에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가르침은 좋은 교육을 이루어내기 위한 필요조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르침이 좋은 교육의 충분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인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선행조건이 바로 ‘배움’ 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서 배움은 필수 불가결하다. 가르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배우기 위해서다. 인간은 가르치기 위해서 태어났다기보다는 배우기 위해서 태어났고 이미 배우도록 되어있다(한준상, 1999). 모태의 양수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배우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교육의 핵심은 무엇이고,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며,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의 세 가지 질문이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각자마다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군가는 교육의 핵심을 ‘잘 가르치는데’ 두고, 교육의 목적을 ‘학습자들이 많이 학습하도록 하는데’ 두기에, 교육의 주체는 ‘교수자’ 라고 답할 수 있다. 또 어느 누군가는 교육의 핵심을 ‘잘 배우는데’ 두고, 교육의 목적을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가 서로 잘 배우는데’ 두기에, 교육의 주체는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 라고 답할 수 있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하고 서로 다른 대답들 가운데서 나름대로 총괄적인 ‘해답(解答)’ 을 제시한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해답이 여러 대답 가운데 하나의 해답일 뿐 절대로 ‘정답(正答/定答)’ 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답일 수도 없고 정답이어서도 안된다. 지금껏 교육은 ‘정답 찾기’ 일색이었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사회문 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시대를 초월해서 무한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하나의 정답’ 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해답’이 인정받고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 자기주도학습이 요구되는 이유는 교수자와 학습자 스스로가 서로 다른 해답(解答)을 발견(發見)하고, 각자 다양한 해법(解法)을 발굴(發掘)하고, 전혀 새로운 해제(解 題)를 발현(發現)해 냄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교수자와 학습자와의 만남은 의사와 환자와의 만남과 동일하 지는 않지만 유사하다. 의사와 환자와의 만남은 시종일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어떤 경우에는 진료와 시술을 통해 환자가 지닌 고통과 불편을 치료(治療)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해 치유(治癒)하기도 한다. 의학교육에서의 자 기주도학습은 환자에게 새로운 시술법을 적용한다는 기술자로서의 차원이 아니라, 그 수준을 넘어서서 환자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맥락에 맞는 인술자로서의 태도와 마음 자세를 추구한다.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려는 용기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는 기술자가 아니라 바로 인술자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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