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교수-학습이론의 변화에 따라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 바뀌고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이 적용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과대학들도 세계적인 의학교육의 변화 추세에 따라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현장에 적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따라서 의과대학의 학습환경 또한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학교육자들은 의과대학생들의 학습행태가 수십 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고 비슷하게 유지되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의학교육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학이라는 학문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의과대학생의 학습행태가 수십 년 전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학습자의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Swanwick (2010)은 자기규제학습(self-regulated learning)의 모델을 계획(planning), 학습(learning), 평가(assessment), 조정(adjust-ment)의 4단계 순환 고리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개인의 인식론적 신념(personal epistemology), 학습유형(learning style), 학습전략(learning strategy), 원칙과 방법의 연결(connecting principles with methods)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학교육 문헌에서도 인식론적 신념(Rhee et al., 2009)과 학습전략(신홍임, 2009; 이승희, 2009; Shin et al., 2010)에 관한 연구를 찾아볼 수 있고 학습유형에 관한 연구는 다수를 확인할 수 있다(Chung et al., 2009). 이외에도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학습자 측면의 요소들이 더 있겠지만 이 연구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요소는 의학교육의 맥락에서 의과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이다. 의과대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의 특성이 다를 수 있지만 이 글에서 의과대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의 학습에 대한 믿음의 차이까지 기술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의과대학은 의학전문대학원을, 의과대학생(또는 의대생)은 의학전문대학원생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글의 목적은 국내외의 문헌을 고찰하여 ‘수십 년간을 유지하고 있는 의과대학생들의 학습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의과대학생들의 학습신념(learning belief)이 무엇이 있는지, 왜 이런 신념을 갖게 되었는지, 이런 신념들이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또 미래의 연구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것이다.
학습에 대한 신념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학생들의 심리적 요소는 다양한데 그 중에 ‘수십 년에 거쳐 지속되는 의과대학생의 학습행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요소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개인적 인식론(personal epistemology)이다. 인식론은 지식(knowledge and knowing)에 대한 개인의 신념을 의미하는데, Perry (1970)는 미국 대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들의 지식에 대한 신념이 점차 더 복잡하게 발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Perry (1970)는 이 단계들은 지식을 교수자(knower)로부터 학습자에게로 전달되는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신념에서 시작하여 지식은 유동적이고 변화하며 맥락적이고 반드시 개인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더 복잡한 신념에 이르는 연속선 위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둘째, 의대생의 의학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이다. 이는 학습에 대한 믿음(learning beliefs or beliefs on their learning)으로 인식론적 신념(epistemological beliefs)과 구별되는 것으로 이 글에서 주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하다. 이해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의과대학생들이 의학교육의 맥락에서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학습에 대한 신념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학습 분량이 많다. 2) 암기가 중요하다. 이해는 나중이다. 3) 공부는 경쟁이다.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4) 교과서보다는 강의록이나 족보 위주로 공부해야 시험에 실패하지 않는다. 5) 가르쳐줘야 공부할 수 있다. 강의가 가장 효과적인 교수-학습방법이다. 의과대학생들의 이런 학습신념들은 의학교육자가 교육현장에서 파악할 수 있다. Miller et al. (2002)은 성공적인 해부학 학습을 위해서는 암기보다는 개념과 이해가 더 중요하고, 해부학 학습은 문제해결의 역동적인 기초로서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해부학 교육자의 이런 기대와는 달리 학생들이 해부학을 ‘끊임없는 암기(endless memorization)’로 인식하고 있어 이런 오해가 학생들의 학습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신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있다. 이 중의 어떤 부분은 국제적으로 공통적인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나라 의대생들에게 고유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학습신념의 형성
학습신념의 형성은 개인의 경험의 결과와 의과대학의 문화적 배경, 감춰진 교육과정의 결과일 것이다. Barke et al. (2009)은 화학교육에서 특정 개념에 대한 학생들의 오해를 연구하면서 이 오해는 학생 스스로가 만든 오해일 수도 있고 학교가 만든 오해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학습신념 또한 학생 개인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일 수도 있고 선후배 관계나 교수의 영향 등 의과대학의 영향으로 집단적으로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학습에 대한 선배와 교수의 영향력이 큰 의과대학에서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문화적 차이 또한 교육의 과정과 결과는 물론 학습신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론문화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동양의 의대생들의 문제바탕학습의 학습효과에 대한 논란이 그렇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협동학습을 해나가는 문제바탕학습의 근본적인 전제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논란이다(Frambach et al., 2012).
학습신념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
이런 신념들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신념들은 오랜 경험의 결과이고 또 이 신념들을 토대로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학습을 하고, 졸업을 한 뒤에 성공적으로 의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신념들은 현대 성인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깊이 있는 개념적 이해(deep conceptual understanding),’ 성찰(re-flection), 메타인지(metacognition),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등 인지과학의 연구결과들과 배치되기도 한다. 신홍임(2009)은 의과대학의 전통적인 교수-학습환경이 심층학습보다는 오히려 표층학습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 나아가 이런 신념들은 평생교육 역량이 어느 분야보다 중요한 의학교육에서 자기주도학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이런 신념들은 의학교육의 새로운 교육적 시도들의 가치와 의미를 떨어뜨리고 과학적인 근거 없이 과거를 답습하게 하여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수-학습방법 등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대생들이 수십 년 전의 의과대학생들의 학습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학습의 변화는 생각보다 미미할 수 있다. 학습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근거는 약할지라도 이런 신념들은 의과대학이라는 조직에서 수십 년에 걸쳐 교수로부터 학생에게, 선배로부터 후배에게 전달되어 온 직접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Bereiger (2002)는 이런 신념을 “직접 경험에 근거한 확실성의 아우라가 있어서 그 권위 또한 상당하다. 예를 들어 지동설이 밝혀지기 전에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추측이나 해석의 여지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경험의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의과대학에서 경험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예가 있다. 해부학 교육의 변화로 인해 과거와 비교하여 골학(osteology)의 비중이나 교육적 효과가 전과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골학 오리엔테이션이 여전히 많은 의과대학에서 중요한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좋은 예로 학생들의 변하지 않는 신념의 산물일 수 있다.
Williams & Klamen (2006)은 의과대학 교수들의 교수에 대한 믿음이 교수 행동의 일차적인 결정요소인 것 같은데 교수들이 그들의 핵심적인 교육신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였다. 또 이런 신념들을 발견하고 그 장단점을 파악하여 신념과 실제 교육활동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Taylor et al. (2007)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소아과 임상교육에 대한 의학교육자의 교육신념을 교육신념 일람표(teaching perspectives inventory) 작성, 관찰과 심층면접을 활용하여 의학교육자의 교육신념의 복잡한 단면을 파악하였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임상교수들은 임상현장의 시간적인 제한, 환자진료 위주의 업무 등으로 인해 내용전달, 학생들 사이의 사고촉진, 학습경험에 대한 질문과 경험 기회의 제공, 학생들을 학습자로 존중하는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결론으로 신념이 매우 중요하여 이를 교수자가 인식하고 어떻게 학생들을 잘 교육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신념도 교수들의 교육 믿음과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하고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학습신념의 내용과 학습에 미치는 영향
1. 학습 분량이 많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의 학습량이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도 정해진 시간 안에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학생 탓이 아니다. 학생들이 소화할 수준의 학습 양을 가지고 정해진 졸업 역량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학교육자의 할 일이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 학생들이 수박 겉핥기식의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면 이것은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학교와 교수의 책임이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족보(기출문제집)를 토대로 하여, 단순 암기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교육과정의 문제이지 의학 자체의 특성이 아니다. 그러나 의학정보의 방대함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핵심이고 어떤 학습 단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하고 이대로 가르친다면 수십 년간 지속된, 의대생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신념은 약해질 수 있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많은 분량에 노출되면서 자신의 학습능력의 상한선을 끌어올리는 면 또한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보다는 암기를 강조하고 교과서보다는 족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배들의 조언과 학습에 대한 신념은 의대생의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성찰의 학습습관 형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또 무엇보다도 임상의사에게 중요한 임상추론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2. 암기가 중요하다. 이해는 나중이다
이 신념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의학교육은 다른 학문 영역에 비해 많은 양의 사실적 자료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 암기는 학생의 학습에 단기적,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혹시 단순하게 암기를 해서 시험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연속되는 학습에 효율적인 토대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학습 분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무엇보다 학생평가와 관련이 깊다. 단순 암기로 풀 수 있는 문제보다 문제해결형 등의 이해와 추론이 요구되는 방식으로 평가를 개선한다면 학생들의 암기 위주의 학습습관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오선아 외(2010)에 의하면, 의학교육은 다른 학문 영역에 비해 많은 양의 사실적 자료를 기억해야 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하며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전문적 기능의 수행능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학습자료의 설계와 제시방법, 전체적인 교육과정 설계와 실행방법에 있어서 학습자의 인지적 부하를 줄여줄 수 있는 고려가 필요하며, 구체적으로는 과도한 외적, 내적 인지부하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스키마 형성 인지부하를 증진시켜 줄 수 있는 세심한 노력을 강조하였다.
3. 공부는 경쟁이다.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의 경쟁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상대평가에 익숙한 학생들은 내가 어느 정도 학습목표에 도달하는지 또는 의학교육적 관점에서 말하면 기대하는 역량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보다 내가 몇 등을 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환경적인 면에서도 인턴, 레지던트 선발 시에 학교성적을 고려할 때 단순하게 적체 학급인원 몇 명 중에 몇 등인지의 방식으로 순위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정 수준에 도달 했는지, 면허를 부여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의사면허시험의 결과를 인턴 선발에 활용하는 일은 분명히 난센스다. 또 경쟁적인 문화는 협동학습에도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때로는 경쟁심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협동학습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협동학습의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의과대학생들이 그룹 스터디를 적절히 활용하기도 하나 여전히 아쉬운 면이 있다. 특히 문제바탕학습의 경우 협동학습이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인데 모여서 토론을 할 때는 잠시 협동학습의 형태를 취하나 세션 사이의 자기학습시간에는 팀원 간의 협동학습이 거의 이루어지지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공통과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학생들은 함께 공부하며 서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상승작용을 경험하기보다는 공통과제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자기가 맡은 부분만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4. 교과서보다는 강의록, 기출문제집(족보) 위주로 공부해야 시험에 실패하지 않는다
이 문제 또한 과도한 학습 분량, 암기 위주의 학습과 연관이 있다.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지 않고 족보나 강의 프린트물 위주로 공부하는 행동은 과도한 학습 분량의 결과이고 암기 위주의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과서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학습이 되는 부분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강의 중간 중간의 퀴즈나 과제 제출 요구 등으로 교과서를 더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또 음성적인 족보문화의 원천적인 차단을 위하여 문제를 공개하고 시험 직후 바로 해답을 공개하는 등의 정책 또한 고려해볼 만하다. Southwick et al. (2010)은 미생물학의 감염질환과정이 지나치게 파워포인트(Power Point) 강의, 파워포인트 강의록, 선다형 시험을 일차적인 교육수단으로 삼아서 학생들의 단기 기억을 조장하고 이해와 장기 기억을 저해하고 또 학생들의 능동적 학습을 방해한다고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우리 의학나라의 교육현장에도 참고할 만하다. 1) 강의 몇 시간 전에 2개 정도의 일반적인 질문에 이메일로 답을 보내도록 요구하는 등의 적시교육(just-in-time teaching), 2) 동료 교수(peer instruction) 또는 이메일로 답을 보낸 학생들을 4명 단위로 묶은 대규모 그룹 세션, 3) 교과서와 인터넷 자료를 활용한 교육, 4) 병리생태와 감별진단에 초점을 둔 소규모 그룹 토론, 5) 학생의 이해를 장려하고 확인하기 위한 에세이 시험.
5. 가르쳐 줘야 배울 수 있다. 강의를 들어야 학습을 할 수 있다
이 신념은 다른 신념과 달리 교수와 학생이 공유하는 신념일 수 있다. 문제바탕학습의 효과를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학생은 물론 교수도 있다. ‘이렇게 엉성한 방법으로 어려운 의학공부를 할 수 있을까?,’ ‘체계적인 강의를 해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Luian & DiCarlo (2006)는 지나치게 빠듯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학생들이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의사소통 등의 의사로서 평생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의 일부를 교수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들은 교수들이 ‘모든 내용을 강의에서 다루려는 경향(cover the con-tent)’을 보이고 소그룹 토론, 협동적 문제해결, 탐구활동(inquiry-based activities) 등으로 인해 ‘가치 있는 강의’를 잃게 되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한다고 설명하였다. 강의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교수학습방법임은 분명하고 교육자원의 활용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학교육의 특성상 문제바탕학습 등의 소그룹 학습, team based learning과 같이 소그룹 학습과 강의를 접목한 학습, 시뮬레이션 학습, 도제 방식의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더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 조금 더 다양한 방법의 교수-학습방법에 대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자기주도학습의 맥락에서 ‘가르침’보다는 ‘서로 배움’으로 학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성길(2010)은 이 문제에 대해 지금껏 교육을 교수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가르치는 일이고, 학습자 입장에서 이해하면 배우는 일이라고 구분하곤 했으며 가르치기만 하면 배우는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열린교육 평생학습 시대에는 배움의 목표에서부터 내용, 방법,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학습자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창조적 교육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자기 주도학습의 중요성과 용기를 강조하였다.
학습신념에 대한 대책
먼저, 이런 학습신념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존재하는지, 왜 이런 학습신념이 형성되었는지 원인을 탐색하고 이 신념이 학습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심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개별적인 학습신념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먼저 일반적인 대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합리적인 시간 안에 소화할 수 있는 학습목표를 설정하여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부담을 주지 않고 단순암기보다는 이해와 문제해결능력 습득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2) 학생들이 암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실 정보의 총량을 감소시킨다. 3)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여유 없이, 빠듯하게 되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기학습시간을 제공한다. 4) 학생평가를 교수-학습 통합과정의 일부로 인식하고 시험을 학생들의 학습을 증진시키는 기회로 활용한다. 5) 순위 위주의 평가를 개선하는 등의 경쟁을 완화하고 협동학습을 장려하는 환경개선을 하여야 한다. 6) 학생들이 자신만의 공부 전략과 메타인지기술(metacognitive skills)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식, 비공식 프로그램을 제공하여야 한다. 7) 선후배 간에 전수되는 학습과 관련된 오리엔테이션 실태를 파악하는 등의 숨겨진 교육과정을 파악하고 대처한다.
개별적인 신념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의 예를 들어 보자. 의과대학생 대상의 근거바탕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 워크숍은 교과서나 의학저널 등의 근거 있는 자료를 학습에 잘 활용하지 않는 학습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Sastre et al. (2011)은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EBM 워크숍을 시행한 결과 학생들이 효율적으로 EBM 자료를 검색할 뿐 아니라 EBM 자료를 더 잘 활용하고 환자기록에 EBM을 더 잘 통합시킨다고 보고하였다.
결 론
학생들이 학습상황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학습에 대한 관점, 신념, 태도, 메타인지지식은 학습과정과 궁극적인 학습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Bernat & Gvozdenko, 2005). 의과대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신념은 학습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큰데, 이 신념들의 실체와 원인, 영향을 파악하여 긍정적인 영향은 확대시키고 부정적인 영향은 최소화시키는 교육전략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교수-학습설계, 교수활동, 교과과정설계와 운영에 활용하는 일은 의학교육자의 중요한 임무이다. 의과대학은 다른 대학과 다른 학습문화를 갖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되면서 의학전문대학원은 의과대학과는 다른 학습문화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의 차이점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더 긴 의과대학제도의 영향인지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기존의 의과대학생과 거의 비슷한 학습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사이의 학습문화의 차이를 연구하기보다는 기존의 의과대학 위주의 학습문화에서 학생들의 학습신념이 어떤지 의학교육자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외의 문헌을 고찰하여 의대생과 의전원생의 학습신념의 내용, 원인, 영향을 기술하였다. 의대생의 이런 학습신념들은 새로운 의학교육의 시도들을 의미 없게 또는 가치가 떨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일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기주도학습이 전제되지 않은 문제바탕학습은 기대하는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또 비판적 사고, 임상추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의미 없게 만들 수 있다. 이 논문의 한계는 기술한 학습신념이 과연 존재하는지 또 그 영향은 어떤지를 체계적인 연구방법으로 도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학습신념 측정도구(learning belief inventory) 개발과 활용, Q-sort 방법, 관찰과 심층면접 등의 질적 연구방법으로 실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Taylor et al., 2007; Williams & Klamen,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