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14(1); 2012 > Article
왜 의학전문직업성 교육인가?

Abstract

The idea that medicine itself imposes certain obligations upon the physician probably originated in Greece. It is Socrates in the fifth century BC who first discussed medical professionalism. Socrates said that no physician should seek the advantage of the physician but of the patient. For the physician was a ruler of bodies and not a money-maker. However, it is Hippocrates, the contemporary of Socrates and the Father of Medicine, who founded medical professionalism education and professional medical ethics. The professional spirit of Greek physicians is summed up in the magic phrase ‘love of humanity.’ In Epidemics I, Hippocrates expressed hope that physicians would help patients, or at least do them no harm. He also said, “Life is short; Art is long” in The Aphorisms. Here he described the reflective philosopher and the practiced physician. At once he sang the shortness of human life and the extent of the medical arts. Moreover, he made students swear by the gods that “I will keep pure and holy both my life and my art.” The Oath can serve as a coherent starting point and organizing framework for medical professionalism education and professional medical ethics. We need to have an opportunity to employ this fascinating text in teaching medical professionalism and medical ethics. In this article, the author asserts that the Hippocratic Aphorism (Life is short; Art is long) and The Oath, the most famous work of the entire Hippocratic collection, should be used for medical professionalism education.

서  론

전통적으로 대학교육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공교육과 일반 분야에 대한 교양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전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직업적 세계관을 형성시켜준다면 교양교육은 전인적 인간관을 심어준다. 학생들은 전공교육을 통해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능력을 키우고 교양교육을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해 간다. 학생들은 교양공부와 전공공부를 조화시켜 특정 분야에만 능숙한 전문가가 아닌, 폭넓은 교양을 갖춘 전문인이 되도록 노력한다. 문학청년들이 열역학 제2법칙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듯이, 자연과학도들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연과 우주,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갖춰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지성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폭넓은 교양의 바탕 위에 깊은 전문지식을 쌓은 인간의 모습을 이상으로 떠올리면서 교양적 지식과 전문적 지식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오면서 대학이 직업을 위한 교육장으로 변하면서 고도로 전문화되어 가는 학문의 세계에서 한 분야만이라도 제대로 전공하는 것이 교육현장의 급선무가 되다 보니, 보편적 교양교육에 의한 전인적 인간형성이라는 교육적 이상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교육현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기 이전의 예과 2년이나 전환 후의 일반대학 4년의 기간은 학생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여 의사라는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필요한 인격적 바탕을 마련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의학교육자라면 누구나 의대생들을 따뜻한 휴머니즘을 갖춘 의학도나 냉철한 과학성을 갖춘 전인적 의사로 키우고 싶을 것이다. 의학도들도 첨단 의술을 갖춘 과학적 의사이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한 철학적 의사를 꿈꾸며 과학성과 인간성을 겸비한 의사를 추구할 것이다(반덕진, 2006).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방대한 의학이론과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매일매일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연구성과가 더해져 학생들은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자연과학적 지식에 매몰되어 의학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중고교 시절에 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대학에 온 학생들이 의과대학에 와서도 부족한 교양교육을 보충하지 못한 채 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생명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건강이란 무엇인지에 철학적 성찰보다 병을 고쳐서 수입을 올리는 데에 1차적인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의료현장에서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약화되고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왜 의학전문직업성교육인가?”라는 문제의식 아래에 오늘날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에서 의학전문직업성 교육이 왜 필요하고 의학전문직업성의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살펴본 다음, 전문직업성을 갖춘 히포크라테스적 의사의 모습을 고고학적 차원에서 고찰해 보면서, 오늘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전문직업성 교육에 포함되면 좋을 내용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의학전문직업성의 철학적 근거를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에게서 찾는 이유는 서양의 학문사에서 명확한 연구대상과 독자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학문을 발전시킨 시대와 장소가 고전기 그리스였고, 이 시대에 전문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학도 마찬가지로 이전의 신비적 의학과 결별한 합리적 의학이 그 전문성과 윤리성을 겸비하여 진정한 의미의 서양의학의 출발점이 된 것이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의학이기 때문이다.

의학전문직업성  교육의  필요성

의학은 오늘날 전문성을 습득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학문의 하나이다. 다른 학문의 습득과정보다 훨씬 긴 수련을 요하기 때문에 졸업을 하면 의학전문가로서 일반직 종사자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대체로 일반직 종사자들보다 높은 사회적 평가와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의 보장성과 경제적 안정성에 있어 의사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삶이 점차 의료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병원을 출입하다가 영안실에서 이 세상과 작별한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활이 의료화되고 있다. 생활의 의료화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와 병원에 대한 심리적 의존성을 높인다. 인간의 삶에서 건강과 생명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의사의 전문성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적 독점의 형식으로 보호를 받는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의술을 가진 사람도 국가가 인정하는 의사면 허증이 없으면 치료할 수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한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의사들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다.
이처럼 의사들은 의료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 대신 사회에 대한 일정한 책임의식도 요청받는다. 전문가들의 전문성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약자의 권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것 같은데, 의학 분야에 가장 잘 적용되어야 할 사고가 아닌가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세가 전문직업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나아가 이것은 일반인이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보내는 사회적 존경과 신뢰의 근거가 된다. 전문가들은 공인으로서의 일정한 사회적 역할과 함께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수준을 요구받게 되고, 이에 부응해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직업적 전문성을 유지하고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적 행위에서 일정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율적으로 동업단체를 조직하여 회원들이 준수해야 하는 윤리강령을 만들어 실천하기도 한다(반덕진, 2011). 역사적으로 의사전문가 집단은 이런 전통을 가장 먼저 만들었고 의사단체의 이런 노력은 훗날 다른 전문 분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전문직업의식은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 있을 때 교육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히포크라테스’라는 꿈을 안고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인지, 의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의학과 의술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어떤 자세로 환자를 대하고 치료할 것인지, 의사로서 자기 인생의 최종 목표를 무엇에 둘 것인지 등에 대해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막 가치관과 윤리관, 직업관과 인생관이 형성되어 가는 이 시기에 훗날 진료현장에 가서도 현실적 상황에 오염되지 않을 의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직업정신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신입생들 중에는 의사로서의 숭고한 이상보다 다른 목적을 갖고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에 적성이 맞는지, 고통스런 수련과정을 견딜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별다른 자기점검의 과정 없이, 사회적 평판이나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오늘날에는 이런 부류의 학생들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의학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고 교육적 의미는 더욱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예비 의사로서의 선천적 자질과 마음공부가 잘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설정한 의사로서의 이상과 목표가 올바른 것임을 확신시켜주고 더욱 강화시켜주면 된다. 반면에 의사로서의 본질적 사명보다 부차적인 목적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의 경우는 그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아직 성장과정에 있는 학생들이므로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젊음의 한순간,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올바른 길을 망각하지 않는 존재이기에 교육자들은 한순간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적 부귀공명에 경도되기 마련인 학생들을 교육을 통해 억지로라도 아직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가 있음을, 아직 그들이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세계가 그들 앞에 펼쳐져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항상 외부세계로만 향하기 마련인 그들의 시선을 자신들의 내면적 세계로 향하게 하고, 의료자본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그들의 가슴을 의사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으로 채워줘야 한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에 대한 사랑이 있다”(Hippocrates, Precepts 6)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사랑(philanthropia)과 의술에 대한 사랑(philo-technia)이 서로 분리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의학교육을 통해 예비 의학도의 심혼(心魂)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용어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의학전문직업성의  철학적  근거

서양의학사에는 의학의 전문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기원전 13세기의 치료영웅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는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는데(천병희, 2001), 그들 대부분이 건강이나 의학의 전문가들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자녀에 대해서는 기록이 서로 다르지만 아들 둘과 딸 둘의 이름이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다. 첫째 아들 마카온(Machaon)은 외과의사의 자격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고, 동생인 포달레이리오스(Podaleirios)는 형과 함께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여 내과의사로 활동했다. 장녀인 휘기에이아(Hygieia)는 건강의 여신으로, 동생인 파나케이아(Panakeia)는 의약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아스클레피오스의 집안은 장남인 외과의사, 차남인 내과의사, 자기관리로 질병을 예방하는 건강의 여신, 초목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약의 여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직업들이 일찍부터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양의 학문이 시작되는 기원전 5세기에 오면 수사학, 철학, 역사학, 비극 등과 함께 의학도 학문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기원전 5세기에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히포크라테스(BC 460-375)가 나타나 의학의 연구방법을 개척하면서 의술의 전문성이 더욱 깊어졌고, 훗날 의술의 전문성에 걸맞은 고도의 윤리성까지 갖춤으로써 그는 서양의학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제 의술은 행운이나 우연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경험, 관찰, 추론을 통해 얻은 진정한 기예(techne)가 되었다. 그런데 의술이 테크네로 인정받으려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추어야 했고 의사의 전문성은 의사가 증상의 규칙성과 주기성을 얼마나 정확히 알아내는가, 의사의 예후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확한가, 그리고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한 섭생법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달려 있었다. 의사가 지닌 전문성의 수준은 유능한 의사와 무능한 의사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다(반덕진, 2011).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이미 고대에서부터 철학적 근거가 마련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의사가 지닌 의술은 그 대상이 되는 환자에게는 이롭지만 의술을 지닌 의사에게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관념이 있어 왔다. 왜냐하면 의사의 고통은 환자의 고통을 대하는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괴로워하면 이를 지켜보는 의사의 마음도 아프고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의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슬픔과 기쁨은 오직 환자의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에서부터 의학의 목적은 의사의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이익에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의사의 전문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국가」의 1권에서 길게 논하고 있는데,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술은 의술에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오(Plato, Republic 1.342c) (박종현, 1997).
소크라테스는 의사의 전문적 기술은 전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의술도 의사의 이익이 아닌 환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의사는 돈벌이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인가요? 진정한 의사인 사람을 말하시오” 내가 말했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그가 대답했네(Plato, Republic 1.341c) (박종현, 1997).
물론 이 말이 제자의 글을 통해 표현된 역사적 인물로서의 소크라테스의 것인지, 아니면 스승의 말을 빌려 플라톤 자신이 한 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말은 다양한 전문직 가운데서도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적인 목표가 무엇이고 의사의 존재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의사든 그가 의사인 한, 의사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결코 없고 환자를 위해 일한다네(Plato, Republic 1.342d) (박종현, 1997).
고전기 그리스인들은 어느 분야의 전문성이란 전문가 자신의 편익이 아니라 그 기술의 적용을 받는 자의 편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었고, 이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정에서 이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일이 없이 환자를 치료해주고 보수를 받을 뿐이지만, 공직을 맡은 정치가들은 많은 일을 적들을 괴롭히고 친구들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Aristotle, Politics 3.1287a) (천병희, 2009).
위에 인용된 글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당대의 의사와 정치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비쳤던 듯하다. 그에게 의사는 비교적 전문가적 소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정치가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 마케도니아 궁정의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사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그의 기대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모든 전문 기술은 자기에게 이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스림을 받는 쪽에 이익이 되는 것을 제공한다네. 다시 말해서 더 약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않는다네(Plato, Republic 1.346d) (박종현, 1997).
좋은 의술은 환자를 위하는 의술이고 좋은 요리술이란 먹는 사람들을 위한 기술이듯이, 모든 기예는 그 기예가 적용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어떤 전문적 지식도 강자가 아니라 그의 지배를 받는 그 대상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든 요리사든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된다(반덕진, 2006).
의술을 가진 의사의 목표는 진료비를 받아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다만 그 의사의 돈을 버는 재능이 치료비를 받게 할 뿐이다. 물론 플라톤은 전문 기술과 그에 부수되는 돈 버는 기술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만일 그 일에 보수가 지불되지 않는다면 전문 기술자의 이익은 없게 되고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수고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의 핵심은 의술은 개인적 이익과는 무관하며 전문직 중의 하나인 이상 그것이 처음 목표로 한 환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나타난  의사의  모습

전문성의 의미와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고전기 그리스 의사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Hippocrates, Epidemics 1.11) (Jones, 1923).
위의 인용문이 히포크라테스의 글인지, 아니면 그의 제자의 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글을 쓴 의사는 의학의 목적이 의사의 성공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에 있음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먼저 언급하고 있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어라”라는 말은 의사들이 항상 지킬 수만은 없는 이상적 목표이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마라”라는 말이 현실적 목표가 부가된 것 같다. 만약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적어도 부적절한 방법에 의해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진료하라’라는 윤리적 대전제가 당대 의사들 앞에 놓여 있었고(반덕진, 2006) 이런 정황은「히포크라테스 전집」의 여러 편에 나타나 있다. 그 중「선서」에는 “환자를 돕기 위해”라는 표현이 두 단락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3단락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돕기 위해 섭생법을 처방할 것이며 환자들을 위해나 비행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Hippocrates, The Oath) (Jones, 1923).
여기서 “환자를 돕기 위해”라는 구절은 의학의 대상과 목적이 담긴 부분으로 의학의 대상은 ‘질병’보다 ‘환자’이며, 의학의 목적도 ‘치료’가 아니라 ‘도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의학의 근본정신이 인본주의에 입각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마지막의 “환자들을 위해나 비행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라는 다짐도 앞부분의 “환자를 돕기 위해”라는 표현과 대응하는 표현이다. 의사는 “환자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환자를 돕는다”라는 언명은 의사들이 항상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을 위해나 비행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라는 현실적 언급이 추가된 것이다.「선서」는 의사의 삶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5번째 단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가겠습니다(Hippocrates, The Oath) (Jones, 1923).
“순수하고 경건한 삶과 의술”은 의사의 직업적 삶과 개인적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직업적 행위와 개인적 행위가 모두 정직하고 성실해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 직업윤리와 개인윤리의 도덕적 합일이 진정한 의사의 완결요건으로 제시되고 있다(반덕진, 2006). 평 생 동안 자신의 삶과 의술을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측면에서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온 의사는 영원한 명예로 보상을 받게 된다(반덕진, 2012).
「선서」는 의사의 이상으로 ‘명예 추구’가 제시되면서 마무리된다. 의사는 ‘재물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환자들 사이에서의 명예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명예를 얻는 것이 의사의 이상적 가치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선서」의 내용을 위반하게 되면 그 반대인 불명예를 내려주도록 선서자는 기원하고 있다. 의사는 영원한 명예를 최우선으로 추구할 뿐 다른 가치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업(醫業)은 전문적 기술과 고도의 윤리의식이 필요한 분야여서 고대에서부터 의사에게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한 덕목이 요구되었다. 의사는 우선 심신의 자제력을 갖추어야 했다(Hippocrates, Physician) (Potter, 1988). 의사로서의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당시 의사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의사로서의 선천적 능력의 구체적인 요소에 관해서는「예의에 관하여」에 기술되고 있다.
철학자인 의사는 신과 같다. 지혜(철학)와 의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의학은 지혜에 필요한 모든 자질들을 내포하고 있다. 의학은 공정성, 겸손함, 신중함, 건전한 사고, 판단력, 평온함, 단호함, 순수함, 정중한 언어…미신의 탈피, 탁월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Hippocrates, On Decorum 5) (Jones, 1923).
이와 반대로 무절제, 야만, 탐욕, 색욕, 사취, 몰염치는 의사의 금기사항으로 규정되고 있다. 플라톤이「국가」에서 양성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인간상도 철인 왕이었듯이 히포크라테스 학파도 철학적 의사 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의사에게도 철학자적 소양이 필요하며 의사가 만약 철학자이면 그는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반덕진, 2005).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들이 추구했던 철학적 의사 상은「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격언집」의 첫 구절에 나타나 있다. 이 격언은 고대 의사들 사이에서도 가장 유명했던지,「격언집」에 담긴 400여 가지의 경구 중 첫 번째로 등장한다. 이 경구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아직 만장일치의 의견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이 경구에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환자, 조수들, 주변 여건들과 협력하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Hippocrates, Aphorims 1) (Jones, 1931).
이 경구의 첫 문장은 곧바로 성찰적인 철학자와 숙련된 의사의 모습을 보여 준다. 동시에 의술의 방대함과 인생의 유한함을 노래한다. 두 번째 문장에서 ‘기회 (kairos)’란 의사가 개입해야 할 시점과 개입의 정도를 의미한다.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최적의 시기에 개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경험 (peira)’이란 의사의 오감을 통한 다양한 진단 경험들을 말하는데, 이것들 역시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질병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예후에 대한 ‘판단 (krisis)’도 어렵다며 질병에 대한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추론이 결코 쉽지 않음을 토로하고 있다(반덕진, 2006). 결국 이 독백은 ‘경험’과 ‘관찰’, ‘판단’과 ‘추론’이라는 두 가지 의학방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세계가 이처럼 불확실하므로 의사는 환자 치료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불확실한 의술을 체득하기 위해 의학도들은 진지하고 경건하게 수련에 임해야 하고 환자의 진료에 모든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해도 죽을 때까지 모두 습득할 수 없는 것이 의술이니, 의학도들은 의술의 방대함과 인생의 유한성을 깨달아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쉼 없이 의술의 연마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반덕진, 2006). 이 경구는 인생의 유한성, 의술의 방대함, 의술의 한계, 의사의 준비성 등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이 경구는 의학도들에게 의술에 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의술이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의술의 주체인 의사는 의술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줄이기 위해 진료실에서 겸손하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치료 효과의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의사들은 오늘날에도 실험실, 진료실, 수술실에서 새로운 의학지식을 발견하고 의술을 개발하기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의 의술을 전수하고 제자들은 스승의 연구 위에서 출발하여 자신들이 새롭게 얻은 지식과 기술을 그들의 제자들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의술은 세대를 이어가며 축적되고 발전한다. 이처럼 의학의 현장에서 나날이 쌓이고 새로워지는 의학지식과 기술을 충실히 익혀 진료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가 의술 앞에 자만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의학지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달콤하고 화려하기보다 외롭고 고통스런 작업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체의 비밀과 질병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의사들은 요란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실험실, 연구실, 병실에서 자신의 인식 욕구를 극한까지 밀고 가야 한다. 이런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

결  론

오늘날 의학전문직업성 교육은 무엇보다 의대생들에게 강렬한 직업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의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삶과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가야 하는가? 왜 의사의 개인적 행위와 직업적 행위는 도덕적 합일이 필요한가 등에 대해 쉼 없이 묻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이 평생 본받고 닮고 싶은 이상적인 의사상을 그들의 가슴에 새겨주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으로 시작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마무리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즉 신입생들에게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라는 격언으로 첫 강의를 시작하고, 6년 과정을 마치고 현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에게 의대 강의의 마지막을「선서」로 장식해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은 의학의 세계가 얼마나 방대하고 여기에 비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한한가에 대해, 그리고 의사의 의술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의사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1) 의학은 어떤 학문인가(의학의 성격), 2) 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학의 방법), 3) 의학을 어떤 자세로 공부할 것인가(의학의 학습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문서로서 격언은 짧지만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선서」는 의사의 신화적 기원부터 시작하여 의사 간의 관계, 의사가 환자에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언급한 후, 의사에 대한 최종 평가로 마무리된다. 의대 6년간의 고단한 수련기간을 마치고 진료현장으로 가는 의사들에게 1) 의사는 누구인가(의사의 정체), 2) 의사는 무엇을 하는가(의사의 본분), 3) 의사는 무엇을 추구하는가(의사의 이상)라는 물음에 대해「선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답변을 내장하고 있다.「선서」는 비록 짧게 압축된 문서이다 보니 현대 의학교육의 내용을 완벽하게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졸업식장에서 한번 낭송하고 폐기하기 에는 아까운 문서이다(반덕진, 2006).「선서」는 오늘날 의사의 전문직업성 교육이나 의료윤리 교육의 자료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관련된 주제와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의사도 언젠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될 때가 온다. 최후의 순간에 의사는 평생의 진료기록부를 내놓고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보다 환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자신에 대한 법적 처벌보다 환자의 불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의료자본가로서의 세속적 성공보다 의료전문가로서의 직업적 보람을 추구했는가? 의사는 자신의 삶과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가며, 비록 도덕적으로 완전한 삶을 살지는 못해도 항상 자기반성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참고문헌

박종현 (역). (1997). 플라톤의 국가-정체 서울: 서광사.
반덕진. (2005). 히포크라테스의 발견 서울: 휴머니스트.
반덕진. (2006). 히포크라테스 선서 서울: 사이언스북스.
반덕진. (2011). 의사의 직업전문성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철학연구, 12:73–93.
반덕진. (2012). 의사의 삶과 히포크라테스의 정신. 이태석 신부 흉상 제막식 및 제2회 이태석 기념 심포지엄; Busan, Korea, Jun 13, 2012 Busan: Inj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천병희 (역). (2001). 일리아스 서울: 단국대학교출판부.
천병희 (역). (2009). 정치학 서울: 도서출판 숲.
Jones, W. H. S. (1923). Hippocrates: volume I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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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es, W. H. S. (1931). Hippocrates: volume IV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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