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20세기 후반 의학지식의 급격한 팽창과 소비자 중심의 사회운동 확산에 따라 의학교육에 역량 중심 교육과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 이러한 맥락에서 선택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흥미나 관심에 따른 과목선택의 기회를 제공하여 학습자 중심의 학습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필수역량의 배양에도 기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2]. 또한 이미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른 제한된 교육기간 내에 교육내용과 방식의 다양화를 꾀함으로써 획일적인 교육을 탈피하고 교육과정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의과대학에서 선택교육과정 활용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국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선택교육과정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는데, 세계의학교육연맹(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이나 범 유럽 차원의 성과를 규정한 Tuning Project 등에서도 선택교육과정을 통한 역량의 배양을 중요하게 다룬 바 있다[
3]. 다만 선택교육과정이 전임상(preclinical)교육과정보다 주로 임상교육과정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이상적인 활용방식에 대해서 학교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2]. 한편 국내 학부 의학교육에서 선택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의 확산과 함께 학생의 요구와 필요에 따른 학습을 장려하는 수단으로 강조되어 왔다[
4]. 그러나 인문사회의학 교육에서 선택과목 개설 및 운영경험을 보고한 일부 의과대학을 제외하면[
5], 대부분은 임상실습에서 선택과목을 운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6]. 또한 상대적으로 교육내용을 유연하게 편성할 수 있는 의예과에서와 달리[
7], 의학과 1학년과 2학년 시기에 진행되는 전임상교육에서는 소수의 의과대학에서 선택과목을 운영한 보고가 있을 뿐[
8], 이를 기반으로 한 선택교육과정의 운영결과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와 국내 의학교육 현실에 기반한 도입과 실행에 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모든 교육프로그램에는 교육과정의 장점 또는 가치(merit or worth)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한 개선과 향상을 이루기 위한 평가가 요구되며[
9], 이는 선택교육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10]. 교육과정 평가는 단선적(linear)이기보다는 순환적(cyclical)인 과정으로, 평가의 결과는 다시 교육과정의 설계와 운영에 반영되어 지속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평가는 흔히 당면한 도입과 운영에 밀려 충분한 계획 없이 이루어지거나[
11], 주로 교육과정의 성과, 즉 ‘의도한 효과가 있었는가?’를 평가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Haji 등[
12]은 교육프로그램 평가 시행 시 도입 당시의 ‘의도한(intended) 성과’와 함께 교육과정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의도하지 않은(unintended) 성과’를 함께 평가하는 것으로 평가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같은 문헌에서 저자들은 의도한 성과만 평가하는 것을 ‘치료법의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은 채 효과성만 판단하는 것’에 비유하며, 역동적 맥락에서 진행되는 교육적 개입에서는 항상 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의 성과를 온전히 평가하려면 실제로 발생한 일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2]. 한편 실제로 평가를 수행함에 있어서 평가대상인 교육과정에 대한 포괄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참여자로부터의 자료수집이 중요하다[
9]. 특히 학생과 교수는 교육과정의 핵심 이해관계자로서 교육과정에 대하여 공통적 견해를 가지면서도 각자의 특수한 관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평가의 타당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13].
이에 본 연구에서는 교육과정의 대규모 개편과 함께 선택교육과정을 새로이 도입한 일개 의과대학에서 진행된 전임상교육에서 선택교육과정 개발절차와 운영경험을 기술하고,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결과를 분석하고자 한다. 일차적으로 평가결과로부터 만족도 등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고, 운영상의 보완 및 개선할 점을 발견하여,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선택교육과정 시행을 위하여 도입과 운영 시에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하여 고찰해보고자 한다.
연구대상 및 방법
1. 선택교육과정의 개발 및 운영
1) 도입목적 및 운영원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2013년부터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의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하며 전임상 교육에 선택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도입목적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는 기회가 되도록 한다. 둘째, 학생 스스로 학습내용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의학에 관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한다. 셋째, 자기주도학습, 학생참여수업, 협력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한편 선택교육과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교육과정위원회에서는 다양한 국내․외 사례와 문헌을 참고하여 네 가지 영역에서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수업운영원칙을 설정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내용은 비판적 사고의 훈련과 실제 진료 및 연구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추론을 중심으로 진행한다(교육내용 영역). 둘째, 일방향 강의보다는 학생참여 위주의 수업을 지향한다(교수법 영역). 셋째, 수업진행 시 학생수준과 진행되는 정규과정을 고려한다(운영 영역). 넷째, 고학년 수업내용에 대한 선행학습은 지양한다(운영 영역). 다섯째, 동 기간에 공통과목이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하여 가능한 수업시간 내에 학습과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한다(평가 및 성과 영역).
2) 과목선정과 학생 배정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2016학년도에 의학과 1학년 학생을 1학기에 ‘선택교과 1,’ 2학기에 ‘선택교과 2’를 개설하였다. 선택교과는 총 8주간 진행되는 1학점 과목으로 주 1회씩 3–4시간의 수업이 이루어져 총 교육시간은 30시간 내외였다. 두 과목 모두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수강하도록 지정하였으나, 해당 기간에 개설된 다양한 과목들 중에서 한 개의 8주단위 과목을 선택하거나 두 개의 4주단위 과목을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학교육실은 각 학기 선택교육과정 시작 3–4개월 전에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선택교육과정의 취지와 운영원칙을 안내하였으며, 과목개설을 희망하는 교수는 강의계획서를 제출하였다. 강의계획서에는 해당 과목의 주제, 목표, 주 단위계획, 담당교수, 참여교수, 수강생 유의사항 등을 기술하게 하였으며, 선택교육과정위원회는 도입취지와 운영원칙을 준거로 강의계획서를 심사하여, 일방향 강의 중심이거나 선행학습의 성격을 갖는 등 일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해당 과목을 배제한 후 최종 과목을 선정하였다(
Appendix 1). 심사 후 채택되지 않은 과목은 10%–15% 수준이었다. 선정된 과목의 책임교수와 참여교수는 ‘선택과목 설계와 운영전략 워크숍(이하 워크숍)’에 참여하고, 강의계획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였으며, 이후 확정된 강의계획서는 의학교육실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공지되었다. 학생들은 개설 예정 과목 중에서 수강을 희망하는 과목을 1지망부터 5지망까지 선택하여 제출하였으며, 의학교육실은 학생들의 우선순위와 과목별 적정 수강인원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과목별 수강생을 최종 확정하였다.
3) 교수개발
선택교육과정위원회에서는 선정된 과목의 책임교수를 비롯한 참여교수 전원에게 워크숍 참석을 의무화하였으며, 모든 교수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동일한 내용으로 2회 진행하였다. 워크숍에서는 선택교육과정의 목적과 운영원칙, 선택교육과정에서의 교수법과 평가법 등을 교육한 뒤, 학생들에게 배부될 강의계획서가 운영원칙과 교수자가 의도한 진행계획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수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소그룹 교수법을 비롯하여 학생-교수, 학생-학생 간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교수기법들을 소개하였다. 평가법에서는 지필고사 외에도 동료평가, 자기성찰일지 등의 다양한 평가법 사용을 장려하였다. 구체적인 평가법 및 평가시기는 과목에 참여하는 교수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였으나, 학생 간 수강 선택과목의 차이가 공통과목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가급적 각 수업시간 내에 평가를 완료할 것을 강조하였다. 선택과목의 평가는 공통과목과 동일하게 grade 방식(A, B, C, D, F)으로 이루어졌으나, 선택과목의 취지를 고려하여 책임교수의 재량에 따라 A학점의 비율을 늘릴 수 있게 허용하였다.
2. 교육과정 평가
개설된 과목의 기본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강의계획서로부터 참여교수진의 구성(소속 교실), 책임교수의 전공(기초의학, 임상의학), 과목의 진행기간(4주, 8주), 참여교수 수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였다. 또한 학생 배정이 모두 이루어진 이후 각 과목의 수강생 수를 파악하였다.
진행된 과목에 대한 평가설문은 ‘선택교과 1’과 ‘선택교과 2’ 내에서 개설된 모든 과목에 대하여 각 과목이 종료된 이후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과목별로 평가를 시행하였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 한 학생이 수강하고 평가한 과목은 최소 2개 과목(선택교과 1과 선택교과 2에서 모두 8주 과목만 선택한 경우)에서 최대 4개 과목(선택교과 1과 선택교과 2에서 모두 4주 과목만 선택한 경우)에 분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참여교수 역시 복수의 과목에 참여하였더라도 참여한 과목 각각에 대하여 평가에 응답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학생대상 설문은 객관식 10문항과 주관식 1문항을 합하여 총 11개 문항, 교수대상 설문은 8개의 객관식 문항과 2개의 주관식 문항을 합하여 총 10개 문항으로 구성하였다. 1번부터 5번, 그리고 7번 문항은 교수와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설문한 문항으로, 과목의 제시된 측면에 대하여 6점 척도(1: 전혀 그러하지 아니함–6: 매우 그러함)로 평가하도록 구성하였다. 각 문항에서 평가한 내용을 살펴보면 1번 문항에서는 과목이 학생의 기대에 부합하는 정도를 물었으며, 2번 문항에서는 수업이 지식전달보다 추론 중심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물었다. 3번 문항에서는 수업에서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였는지를 확인하였으며, 4번 문항에서는 과목이 의학학습에 대한 동기부여에 기여하였는지를 물었다. 5번 문항에서는 내용이 학생의 관심과 수준을 반영하였는지를 확인하였고, 7번 문항에서는 내용습득에 대한 교수법의 효과성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이상의 문항들은 교수와 학생 간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교수와 학생의 설문문항이 서로 대응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는데, 예컨대 “수강한 선택과목의 내용은 수강생의 관심과 수준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학생용 문항은 “선택과목의 내용은 수강생의 관심과 수준을 고려하여 선정하셨습니까?”와 같은 식으로 변형되어 교수용 문항에 제시되었다. 6번 문항은 각 과목에서 사용된 교수법을 체크하는 것으로, 역시 교수와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확인하였으며, 총 6개의 보기(강의, 토론, 소그룹, 공학기자재 사용, 스마트기기 활용, 기타)를 제시하고 이 중 해당 과목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교수법에 체크하도록 하였다. 8번 문항은 수업 외 학업부담을 평가하는 문항으로, 학생은 6점 척도(1: 매우 부담이 없었음–6: 매우 부담이 컸음)로, 교수는 3점 척도(1: 수업시간 내에 잘 따라오는 것으로 충분함, 2: 수업당 1–2시간 내외의 추가적 학습을 요함, 3: 학습자료 외 관련 내용을 스스로 더 찾아보고 심화 학습할 것을 요함)로 평가하도록 하였다. 9번과 10번 문항은 각각 6점 척도로 공통과목의 학습에 도움이 되었는지와 수강한 과목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를 설문한 것으로, 학생에게만 설문하였다. 서술형 문항에서는 수업내용, 교수법, 평가를 비롯하여 선택교과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작성하도록 하였다.
설문문항의 내용타당도를 확보하기 위하여 모든 문항은 기 설정된 운영원칙의 다섯 가지 요소(1. 교육내용, 2. 교수법, 3. 운영, 4. 성과, 5. 평가)를 기반으로 개발하였다. 또한 문항 개발과정에서 연구자 간 의견의 차이가 있을 경우 반복적인 논의를 거쳐 합의를 이루었으며, 개발된 문항은 선택교육과정의 개발과 운영에 참여한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검토를 받은 후 최종문항을 확정하였다. 객관식 설문문항의 신뢰도를 평가하기 위하여 산출한 Cronbach α값은 학생 설문에서 0.886, 교수 설문에서 0.816이었다.
3. 자료분석
본 연구에서 사용된 자료 분석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선택교육과정에 관한 학생대상 설문과 교수대상 설문결과에 대해 기술통계분석을 수행하였고, 이후 학생과 교수 상호 간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하여 상호 대응되는 문항에 대하여 독립표 본 t검정을 실시하였다. 문항 간 상관관계를 분석을 위하여 Pearson 상관분석을 수행하였다. 모든 통계자료의 분석에는 IBM SPSS ver. 22.0 (IBM Corp., Armonk, NY, USA)을 사용하였다. 학생 설문과 교수 응답의 개방형 주관식 응답결과의 분석방법으로는 내용분석(content analysis)을 활용하였으며, 이 과정에는 의학 및 의학교육학 전공자, 교육학 및 의학교육학 전공자, 교육학 및 한의학 전공자로 구성된 연구자 3인이 참여하였다. 분석은 개방코딩, 그룹화, 범주화, 추상화의 귀납적 분석과정을 통하여 유목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마지막으로 해당 주제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응답을 인용문으로 선택하였다. 분석의 신뢰성(trustworthiness)을 확보하기 위하여 분석과정에서 연구자들의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에는 반복적 논의와 합의과정을 거쳐서 최종 주제를 도출하였으며, 최종 분석결과는 직접 분석에 참여하지 않은 2인의 의학교육 전공자에게 보여주고 검토를 받았다.
고 찰
국내・외를 막론하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의 많은 부분은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필수 또는 공통교육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생에게 과목선택권이 주어지는 시기는 주로 임상실습이 진행되는 의학과 3학년 또는 4학년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일개 의과대학의 의학과 1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선택교육과정의 개발절차와 운영방식을 설명하고, 나아가 실제 진행된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수행함으로써 선택교육과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높은 만족도와 학습동기 부여라는 단기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도입 초기인 선택교육과정에 대하여 주요 이해관계자인 교수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의와 개선점을 도출하였다.
연구에서 확인된 주요 결과 중 하나는 선택교육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높은 만족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3점 이하의 만족도 평가를 받은 한 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6점 척도의 중간값(median)인 3.5점 이상에 분포하였다는 점은, 이러한 결과가 일부 과목이나 교수자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물론 교육에 있어서 높은 만족도가 늘 학습성과의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나[
14],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한 경우에는 교육과정 평가에 있어 수행능력(performance)보다 만족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9].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 혹은 대규모 개편의 초기 단계에서는 일시적 수행능력 저하(performance dip)가 흔하게 발생하여[
15], 단기적으로 변화에 따른 수행능력의 개선을 관찰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행 초반에 일정 수준의 만족도를 달성하는 것은 교육과정 개편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성취감을 북돋아 변화의 동력을 유지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16].
학생들의 만족도 평가에서 선택교육과정에서 개설된 과목의 다양한 특성에 따른 만족도 차이가 미미하였으며, 이러한 결과에는 사전 워크숍을 통하여 참여교수들과 선택교육과정의 취지와 목적을 공유하고 그에 맞는 교육과 평가의 원칙을 따르도록 유도한 전략이 기여했을 수 있다. 또한 수강인원이 6명에서 32명까지 다양하였음에도 수강생 수에 따라 만족도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업규모에 맞추어 학생참여를 최대화하기 위한 적절한 교수법이 활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수강생의 수가 32명으로 가장 많았던 한 과목에서는 조별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하고, 수업 기자재를 충분한 수로 준비하였으며, 한 수업에 두 명 이상의 교수자가 참여하여 결과적으로 해당 학기 개설과목 중 가장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반면 선택교육과정을 평가한 설문문항에 따라 전반적 만족도(Q10)와의 상관관계의 강도는 상이하였다. 전반적으로는 아홉 개 문항 중 일곱 개 문항에서 중등도 혹은 강한 상관관계가 확인되었으나, ‘사용된 교수법의 숫자(Q6)’와의 상관관계의 강도는 비교적 낮은 편으로 나타났고, 이는 다양한 교수법의 활용에 따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단순히 교수법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만족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각 교수법에 따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으며, 특히 활용된 교수법의 비율 또는 유형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 간 인식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실제로 활용된 교수법에 따른 만족도의 차이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수업 외 학업부담(Q8)’과 전반적 만족도 사이의 상관관계 역시 낮은 편이었다. 의과대학의 방대한 학습분량은 타 단과대학과 달리 학생들로 하여금 ‘강의내용의 조직화와 요약능력’을 우수 강의자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인식하게 한다거나[
17], 공통과목의 전반적 평가에는 소그룹 운영이나 교수법보다도 학생평가(assessment of students)가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18]. 즉 평가에 대한 부담이 클수록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교수자가 수업 시간에 효과적인 교육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보다는 수업이 시험에 도움이 되는지,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택교육과정에서는 가급적 평가를 수업 내에 완료하게 하였고, 공통과목보다 높은 A학점의 비율을 허용하여 수업 외 학업부담과 전반적인 평가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운영하였다. 그 결과 사전의 기대와 흥미(Q1, Q4), 학생 중심 수업운영(Q2, Q3), 교육의 효과성(Q5, Q7, Q9)과 같은 실제 교육진행과 관련된 요인과 만족도의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타 학문분야에서 학습자의 만족도가 주로 교육프로그램의 질(quality)과 유용성(usefulness)이 연관되는 것과도 상통한다[
19,
20].
한편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는 전반부 4주 과목이 후반부 4주 과목에 비하여 유의하게 높은 만족도를 보여준 점이다. 또한 비록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지만, 학기 간 비교에서도 2학기에 비하여 1학기 개설과목의 만족도가 다소 높게 확인되었다. 이는 학생들의 만족도 평가에서 소위 ‘허니문 효과(honeymoon effect)’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존의 국외 사례에서도 교육과정의 개편에 따라 의과대학생들이 기존과 크게 달라진 새로운 방식의 교육경험을 하였을 때 초기 만족도가 과대평가될 가능성이 지적된 바 있다[
21,
22]. 마찬가지로 본 연구에서는 새롭게 도입된 선택교육과정이 일방향 강의가 대부분인 공통교육과정과 내용, 운영, 평가 측면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학생들의 만족도 평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선택교육과정이 지속되어감에 따라 학생들이 학생참여 중심의 소그룹 교육에 적응하였을 때, ‘허니문 효과’의 감쇄 여부와 그에 따른 학생 인식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방형 응답에서는 만족도 이외의 다양한 초기 단계의 성과가 확인되었다. 우선 ‘의도한 성과’ 측면에서 ‘폭넓은 시각을 제공,’ ‘의학에 관한 흥미와 동기유발’ 등과 같은 선택교육과정의 당초 도입목적이 실제로 학생과 교수의 응답에서도 범주로 도출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공통교육과정의 학습경험을 깊이와 내용 측면에서 확장,’ ‘개인적, 학문적, 직업적 흥미에 따른 주제선택의 기회 제공’ 등을 선택교육과정이 달성해야 할 목적으로 정리한 기존 논의와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23], 국내 의학교육에서 선택교육과정의 필요성과 지속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공통과목과의 연계성을 학생과 교수 모두 중요하게 지적한 만큼 선택교육과정을 배치함에 있어 전체 교육과정 내에서의 시간적, 내용적 관계를 고려하여 공통과목에서 추구하는 필수역량의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특정 선택과목이 일부 학생에게만 제공되는 선행학습 기회로 변질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서술형 응답의 분석으로부터 ‘의도한 성과’ 외에 몇 가지 ‘의도하지 않은 성과’가 확인되었는데, 첫째는 과목 재개설 및 확대 요구와 같은 선택교육과정에 대한 긍정적 인식 형성으로, 선택과목과 공통과목 사이의 주된 차이 중 하나가 수강생 규모임을 고려하면, 소그룹 교육이 대형강의에 비해서 교육형식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와 수업 재참여 의사가 더 높다는 기존연구와도 부합하는 결과라 볼 수 있다[
24]. 둘째, 다수 학생들은 참여교수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언급하였는데, 참여교수들의 응답에서 확인된 ‘교수로서 만족과 보람’을 요인 중 하나가 학생들의 긍정적 피드백이었다는 점에서 학생과 교수의 만족이 서로 상승작용을 가져왔을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성과에 대한 정보는 선택교육과정의 운영과 개선에 활용 가능한데, 예를 들어, 학생들의 과목 재개설 및 확대 요구는 개설된 다수의 과목들 중 어떤 것을 유지하고, 어떤 것을 교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참고자료로 쓰일 수 있으며, 넓은 관점에서 전체 교육과정을 평가할 때 선택교과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메타-평가의 관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성과를 평가준거에 포함시켜 평가도구를 개선할 수 있으며, 이는 달성 수준을 정량화함으로써 다른 성과와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교수 응답에서만 확인되는 의견과 어려움도 존재하였다. 참여교수들은 주된 진행상의 어려움으로 ‘교수법 변화,’ ‘선택교육과정에 대한 학생의 태도,’ ‘제한된 시간 내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등을 꼽았는데, 이는 기존 교육과정과 선택교육과정 간 교육구조 및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하였을 수 있다. 즉 새롭게 선택교육과정이 도입됨에 따라 참여교수들에게는 교육과정 개발자(curriculum planner), 촉진자(facilitator), 평가자(assessor) 등 강의자(lecturer) 외에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온 역할의 수행이 요구되었고, 이것이 교수에 따라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따라서 학습자의 규모가 작을 때 교수자의 적절한 운영과 촉진기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25], 선택교육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교수들의 미충족 요구를 해소하기 위한 교수개발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원체제가 필요할 것이고, 참여교수의 의견이 향후 교육과정 개선 및 운영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선택교육과정의 운영방식과 성과에 대한 평가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새로이 도입된 교육과정에 대하여 자기보고식 설문을 중심으로 진행하였기에 교육과정 평가를 위한 다각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향후 당초 교육과정 도입목표의 도달, 졸업역량 달성, 교육환경의 변화 등을 확인하기 위한 장기적 근거수집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진행과정(process)에 관한 평가와 성과평가는 별개의 목적과 장단점이 존재하며[
9], 본 연구에서는 양적 접근법과 질적 접근법을 모두 활용하고 교수와 학생으로부터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자료의 신뢰도를 높이고, 진행과정상의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둘째, 본 연구의 결과는 연구가 이루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조직의 역사, 규모, 구조 등은 교육과정 변화의 성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므로[
16], 본 연구가 진행된 의과대학이 가진 큰 규모, 오랜 역사, 기존 교육과정 등의 맥락적 특성이 평가결과에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입 초기의 교육과정에 대한 일개 학년대상의 연구라는 점과 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교수 설문응답률도 연구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교수의 응답률이 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는데, 이는 과목당 참여교수의 수가 3.67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과목 평가에 참여해야 할 책임감이 다수의 교수에게 분산되면서 나타난 결과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은 향후 유사한 과목의 평가에서 교수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하며, 이번에 확인된 선택교육과정에 관한 교수와 학생의 인식과 평가가 타 의과대학에서 유사하게 확인되는지에 대한 비교 및 후속연구를 시행함으로써 보다 일반화 가능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