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의학자

Dissect Paintings with the Eyes of Medicine

Article information

Korean Med Educ Rev. 2019;21(3):162-163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9 October 31
doi : https://doi.org/10.17496/KMER.2019.21.3.162
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Yeungnam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Daegu, Korea
이영환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저서: 미술관에 간 의학자: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저자: 박광혁

출판사: 어바웃어북

출판연도: 2017년

쪽수: 389쪽

“아주 상반된 분야처럼 느껴지는 의학과 미술은 ‘인간’이라는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학과 미술의 대상은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저자 박광혁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의사이다. 의과대학 학창시절부터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명화순례’를 떠났던 한 의학자의 남다른 미술사랑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풀어내는 이야기의 주제도 여느 미술평론가들과 다르다. 그는 명화가 가지는 회화적 기법이나 미술사적 사조보다는 그림 속 인물이나 화가의 삶과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의 의학적 상황에 주목한다.

의료현장이 언제나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나듯이 명화 속 인물도 다양한 인간의 ‘삶의 맥락’을 지니고 있기에 그에게 미술관은 진료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료실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는 자신을 괴짜의사라고 소개하며, “캔버스에 청진기를 대고 귀 기울이면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인간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라는 저자의 표현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즉 세상을 바꾼 질병, 화가의 붓이 된 질병, 캔버스에서 찾은 처방전, 의학에 풍성한 이야기의 결을 만든 신화와 종교 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모두 34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37점에 달하는 미술작품과 229명의 등장인물이 함께 어우러져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생로병사 어느 한 시점에 맞춰져서 수많은 의학적 사건이나 질병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인체 해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시작되는 첫 번째 이야기는 해부학 실습에 관한 명화 감상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의학자들과 그에 얽힌 역사적 배경의 흥미로운 전개는 쉽고 친근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의사학(medical history)’ 교본처럼 다가오며, 의학교육에서 해부학 실습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간 의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한 자들에 대한 채무를 떠올리는 그의 예민한 성찰적 고백은 무뎌져 가는 윤리의식을 다시 깨우는 ‘자명종’이 되어 울리기도 한다.

의학은 차가운 이성(과학)과 뜨거운 감성(인문학)이 교류하는 학문이기에 의학자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표현을 읽으면서 의학교육에서도 강조되어야 할 몇 가지 키워드를 떠올려 본다. 그것은 ‘이야기’와 ‘관점’의 중요성이다.

실제로 ‘이야기’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며, 우리들 각자의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물론 의학에는 수많은 과학적 용어와 낯 설은 질병과 약제의 이름으로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나, 실제로 진단과 치료의 핵심적인 과정에는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의료현장은 인간의 생로 병사에 얽힌 ‘삶의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환자-의사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 의료현장은 이제 더 많은 ‘이야기’를 통하여 서로에게 여유롭고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스토리가 부족한 사회가 바로 ‘가난한 사회’라고 지적한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따끔하게 와 닿는다.

또한 명화가 담고 있는 현상 너머의 이야기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새롭게 열리는 법이다. 물론 보통 사람의 기본적인 심성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적 시각’에서 비롯되는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오류의 위험성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과 노력이 요구된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선택적’으로 좁혀 가는 우리들의 시선을 반성해 본다.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선택적 시각’이라는 용어를 떠올리는 순간, 잠시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이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우리의 시선이 기왕이면 밝은 쪽이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따스하고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한 명화 여행은 ‘이야기’ 거리가 궁핍해서 메말라가는 우리를 돌아보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좁게 고정되어 가는 우리들의 시선에 또 다른 도전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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