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미래
The End of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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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학의 미래
저자: 케빈 캐리 지음, 공지민 옮김
출판사: 지식의 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출판연도: 2016년 1월
쪽수: 328쪽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교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가 1088년에 개교를 한 후 13세기에 파리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이 뒤를 이어 문을 열었지만 정확한 설립연도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이 지식이 많은 학자가 문을 연 사설기관에 교육비를 내고 수업을 받았고, 이런 사설 교육기관이 많아지면서 길드를 형성한 것을 개교로 보아야하는가 아닌가에 대해 결론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 대한민국에서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시는 분들이 취임사에서 “취업을 잘 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하는 경우와 “취업률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하는 경우를 모두 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필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총장의 희망사항이 이루어지려면 학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고, 교육에 임하는 교수들이 바뀌어야 할 텐데 시스템은 재임 중에 바꾼다 해도 교수들의 교육방법과 내용을 총장이 바꿀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대학의 미래’ 제1장에서 저자는 하버드와 MIT에서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을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상아탑 안에 머물러 있던 그들만의 교육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대학에 대한 접근권이 완전히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11-13세기에 대학의 시초가 되는 기관에 학생들이 모여든 가장 큰 이유는 진리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이 가지게 될 이익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일류대학을 졸업함으로써 인생에서 무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크지 않았다. 공부 재료라고는 오로지 교수의 말과 토론밖에 없던 시절에 함께 모여 진리를 탐구한 것이 대학의 시초가 되었다. 15세기에 금속활자가 발견된 후 성서와 고전이 인쇄되기는 했지만 대학교재가 인쇄되어 활용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한 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나름대로의 삶을 살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헌신했고, 취업을 한다 해도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의 한국에서는 취업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항상 화두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학이 시대를 이끌 인재를 만들어서 직업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공무원을 비롯하여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몇 개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서 차지하겠다고 하는 판이니 국제경쟁은 누가 할 것이며, 미래에 이 나라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별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과 출신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받아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해서라기보다 점수에 맞추느라 의과대학에 진학을 한다. 이유는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종은 타 직종에 속한 사람들의 경제사정이 좋아져야 수입이 늘어나는 직종이다. 누군가가 경제를 살려놓지 않으면 의사로 열심히 일한다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은 1997년 말에 나라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빌려야 했을 때 이미 경험을 했다.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 법대, 교대, 사대를 선택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는 한 국제경쟁을 할 인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2016년 봄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있었다. 최근에는 가천대학교 병원에서 IBM의 왓슨을 도입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는 것은 정보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1869년, 35세에 하버드 역사상 최연소 총장으로 선출되어 40년간 하버드를 이끈 찰스 엘리엇은 미국의 고등교육에 선택과목을 도입하고, 학부의 교양교육을 강화했다. 이것이 연구 중심의 대학원과 교양 중심의 리버럴아츠칼리지가 공존하게 된 유래이고, 근대 대학교육의 골격이 되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미국은 탄생 시점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 왔다”고 주장한다. 대학이 두 가지 방향을 선택함으로써 수입을 올리기 쉬운 구조가 되었고, 이것이 혁신에는 관심이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이 변화를 꾀하지 않고 있던 1990년대에 실리콘밸리가 나타났다. 미국을 발전시킨 것이 대학인가? 실리콘밸리인가?
저자는 정보기술이 바꿔 놓을 미래의 세상에서는 현재와 같은 대학의 교육기능은 거의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보기술은 더 이상 대학에서 비싼 돈을 들여 미식축구팀과 도서관을 운영할 필요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교육은 여러 도시의 학생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온라인 세미나 형태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것은 대학의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다. 에드엑스(http://www.edx.org)가 제공하는 온라인 강좌는 수백 개에 이르고, 유다시티(http://www.udacity.com), 코세라(http://www.coursera.org) 등 현재의 대학 학부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내용을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서 제공되기 시작했다. 강의 외에 특정 교육목표에 집중하는 OER 운동(http://oercommons.org)도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열린 고등교육체제를 통한 대학교육혁신을 비전으로 모든 강의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대학 간 교육역량 격차에 따른 제약을 완화하여 대학교육의 실질적인 기회 균형을 실현하고자 하며, 궁극적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평생학습기반을 마련, 국가 인적자원개발에 기여'하려는 비전을 가진 한국형무크(http://www.kmooc.kr)가 실용화하고 있다.
‘대학의 미래’ 223쪽에서 저자는 어떤 사람들은 동영상이 재현할 수 없는 강의실의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장과 동영상을 비교해 보니 동영상이 현장보다 더 낫다고 주장을 한다. 동영상에는 멈춤 버튼이 있고, 편집이 가능하고, 잘 들리고, 주변 인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래의 고등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전 세계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이자 관문이 될 것이다.”(303쪽)
“내가 모든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그만 빈둥거리고 공부를 시작해라.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훌륭한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자 열망하는 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1,000배까지 증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314쪽)
유사 이래 지식은 권력이었고, 인쇄술은 지식을 저렴하게 복제하고 배포할 수 있게 했다. 인쇄술이 처음 보급될 때 교수들이 자신의 지식이 쉽게 알려진다는 이유로 위기를 느낀 이들이 많았다. 기득권자가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날의 교수들은 시험문제와 성적이라는 도구로 학생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군림할 수 있겠지만 교육자로서의 능력은 언제 어느 때보다 쉽게 비교대상이 되어 버렸다.
독자께서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이고, 한 명의 인재를 채용하고 싶다면 대학교에 학생추천을 의뢰하시겠는가? 인력채용 회사에 의뢰하시겠는가? 수십 년 전에 유용하게 사용된 교수의 추천서는 더 이상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교수들이 자신의 추천서에 권위를 부여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스승과 제자와 책이 공존할 유일한 장소이고, 지식을 보호하기 위한 높은 장벽을 쳐 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이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러분들이 대학교 총장, 의과대학장이시라면 훌륭한 교육을 위해 교수를 더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실 것인가? 위에 소개한 대학교육용 웹사이트 활용을 적극 권장하시겠는가?
‘대학의 미래’는 과거에 익숙한 교수들이 현재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래에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교육하는 것이 한국대학교육의 현실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대학이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형태로 바뀌게 될 때 현재 (의과)대학교육은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