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경험과 통섭의 가능성, <녹터널 애니멀스>

The Cinematic Experience and the Possibility of Consilience, <Nocturnal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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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Med Educ Rev. 2017;19(1):60-61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7 February 28
doi : https://doi.org/10.17496/kmer.2017.19.1.60
Film Critic, Instructor, Hongik University, Seoul, Korea
윤성은
영화평론가, 홍익대학교 강사

[교육자료: 영화]

영화제목: Nocturnal animals(녹터널 애니멀스)

감독: Tom Ford(톰 포드)

개봉일: 2017년 1월 11일

영상시간: 116분

그 범위를 꽤 넓힌다 해도 ‘의학’ 혹은 ‘의료’라는 주제의 일회성 강의자료로써 “녹터널 애니멀스”는 적절한 텍스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의 투고가 이번 한 번으로 그친다면이 영화는 분명 잘못된 선택이다. 질병과 환자와 의료인과 간병인이 등장하는 영화들, 고통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영화들, 생명과학과 미래사회를 보여주는 영화들, 무엇보다 이 모든 소재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서사를 가진 장르 영화들을 제쳐두고 굳이한 번쯤 졸기 십상인 작품을 고를 이유는 없다. 유수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톰 포드’ 감독은 확실히 대중들의 입맛을 고려하는 연출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인 바람과 명분을 하나씩 앞세워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녹터널 애니멀스”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바람이라는 것은 물론 이 코너를 시리즈로 이어가고픈 욕심의 다른 표현이겠고, 명분이란 곧 본론에서 상술되겠지만 간략히 말해 이 영화가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두 인물-소설가와 독자, 나아가 영화와 관객-을 소통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 의학과 인문학의 통섭이 지난한 노력 이전에 가져야 할 전제, 즉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문이 될 수도 있고, 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광범위한 예시가 될 수도 있다. 철학,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의 학문과 예술이 의학교육의 중요한 일부가 된 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뒷북이라는 지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지식해 보일지라도 필자의 첫(?) 원고는 이러한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이것이 영화학자이자 평론가로서 필자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며, 미리 언급해야만 할 영역이기도 하다는 판단에서다.

현대 아트 갤러리의 관장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수잔’에게 19년 전 헤어진 전 남편, ‘에드워드’의 원고가 도착한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이 소설은 수잔에게 바쳐진 것이며, 제목 또한 그가 불면증이 심한 수잔을 부르던 별명-‘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다. 예술에 대한 회의에 젖어 있는데다 늘 바쁘고 외도 중인 남편으로 인해 불안과 고독에 시달리던 수잔은 밤마다 에드워드의 글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되는데, 수잔의 현실은 다시 에드워드를 사랑했던 소박한 과거와 화려한 현재의 삶으로 나누어진다. 톰 포드 감독은 세 개의 시공간을 고전적인 장면전환방식에 서스펜스를 가미해 다이내믹하게 맞물리며 인물들을 중첩시킨다.

에드워드의 소설은 고속도로에서 만난 불한당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토니’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 텍사스주(州) 도로에서 토니는 지나가던 차에 타고 있던 정체불명의 청년들과 시비가 붙는다. 그는 가족들과 격리되어 외딴 곳에 버려졌고 며칠 후, 토니의 아내와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토니의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었다는 슬픔과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두 가지 국면으로 작동한다. 토니는 사실상 약 20년 전 아내와 딸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가족을 곁에 머물게 할 능력이 없었던 에드워드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가상의 캐릭터로 제조되어 소설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상의 캐릭터가 느끼는 분노와 자괴감은 다시 독자인 수잔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토니의 얼굴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 수잔으로 전환되는 몇몇 장면들은 작가의 존재를 거치지 않고 문학 속 인물이 독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오스틴 라이트’의 원작 소설 제목이 “토니와 수잔”이라는 점은 두 인물의 감정적 중첩이 이 서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실제적 고백이 아니라 픽션, 즉 새롭게 창조된 인물과 상황을 통해 그의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을 이해하게 되고, 차츰 심경의 변화를 보인다. 사랑했던 사람을 쉽게 버리고 떠났던 과오를 깨닫는 한편, 초심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인접 예술들을 의학교육 텍스트로 활용하는 면면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환자의 고통, 노인의 삶과 죽음, 혹은 환자와 의료인/간병인 사이의 소통 및 교감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비록 수잔이 불면증에 시달리기는 하지만-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그린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이 왜, 어떻게 의학교육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가능하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이 상호 조합된 매체로서의 특성상 영화는 즉물적이고 명징하게 연출가의 의도가 전달되는 편이다. 뉴미디어시대의 학습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매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영화도 하나의 언어처럼 배워야 할 문법과 어휘들이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만 해도 공간 구성부터 패션, 메이크업까지 디테일하게 신경 쓴 시각적 장치들과 편집 및 사운드의 활용이 수잔과 토니, 그리고 에드워드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는 최소한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미 적절히 활용되고 있는 서사 및 캐릭터 분석과 더불어 영화 언어의 특정성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한다면 영화가 의학교육에 적용될 수 있는 효용성은 단순히 ‘시각화된 이야기’ 이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영화라는 가상현실을 통해 유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실전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목표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의료인문학에 있어 가장 최신의 주제들이 발 빠르게

등장하는 데다, 상기 언급한 커뮤니케이션 이슈들은 물론이요, ‘죽음’이나 ‘고통’과 같은 철학의 정수도 꾸준히 다뤄진다. 텍스트는 무궁무진하다. 자, 전제를 깔았으니 이제 명제를 꺼내 증명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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