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24(2); 2022 > Article
의과대학생과 의료인을 위한 죽음학 핸드북
특별한 지병 없이 오래 사신 분의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을 위로하면서 호상(好喪)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호상이 있을까? 물론 불의의 사고나 오랜 고통 속에서 앓다가 죽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죽음은 있을 수 있으나,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나 유가족에게 호상이란 없다. 그만큼 죽음이란 당사자나 가족 모두에게 피하고 싶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다. 이것은 직업상 죽음(death)과 죽어감(dying)을 자주 마주해야 하는 의료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생의 시작은 물론 마무리까지 의료기관에서 맞이하고 있다. 2020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망자의 75.6%가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초반만 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영유아이거나 감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이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영유아 사망률은 낮아지고 만성질환에 의한 사망이 늘어나면서 생애 말기(end-of-life)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울러 이러한 의료화(medicalization)된 삶의 마무리 과정에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이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죽음의 ‘보편성’으로 인해 ‘죽음 및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규정짓고 이해하려는 노력,’ 즉 죽음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 관심사였다. 현대적 의미의 죽음학은 대량살상의 참상을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작하면서 재조명되었다. 전통적으로 ‘살리기’ 위한 교육과 진료에만 관심을 가졌던 의료계에서 임종과 임종돌봄 및 죽음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부터였다. 1970년대 일본을 필두로 동양에서도 현대적 죽음학이 생사학(生死學) 혹은 사생학(死生學)이란 이름으로 도입되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후반부터 각종 교육기관에서 ‘죽음교육’ 혹은 ‘죽음준비교육’이라는 명칭의 관련 강좌가 개설되었다. 현재 한국 의학계에서도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비롯하여 생애 말기 돌봄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16년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의과대학 교과과정에서 세 가지 측면, 즉 생애 말기의 의사소통(나쁜 소식 전하기 등), 호스피스 완화의료 중심의 의학적 돌봄(통증 조절 등의 증상 조절), 죽음에 대한 의료인문학 및 생명윤리적 접근(의사조력자살 등)을 통해서 단독 교과목이나 다른 교과목의 교과내용의 일부로 죽음 관련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예비 의료인인 의과대학생과 의료인을 위한 죽음교육의 필요성은 환자와 환자 가족을 돌보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의료인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서 필요하다. 특히 의과대학에서의 죽음교육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프로그램, 즉 청년기에 속한 학생들의 인격적, 정서적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자 환자와 환자 가족을 돌보기 위한 의료전문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측면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여태까지 죽음 관련 논의나 교육은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충분히 반영하기보다는 의료현장에서의 급박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는 식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외국 서적을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여 한국의 법적, 문화적, 역사적, 의학적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의학교육은 물론 의료현장에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보다 본격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의료계에서는 최초로 죽음 관련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죽음학 교실: 삶의 마무리에 대한 의료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심리학자를 비롯하여 의과대학 교수진과 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총 24명의 저자들이 함께 숙고하여 선정한 34개의 관련 주제와 사례를 모은 성과물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 및 학계 전반에 걸쳐 죽음학의 다양한 이론서 및 죽음 준비 지침서가 다수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에 출간된 죽음학 관련 저서와 차별적으로 의학교육 및 의료적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죽음학 관련 주제와 쟁점, 그리고 임상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책의 장별 내용은 서로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크게 10개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 (1) 죽음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이해 및 죽음과 관련된 영적 체험(1, 2, 22장)

  • (2) 동·서양 및 한국 역사 속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인식(3, 4장)

  • (3)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두려움과 심리적 대응(5, 6장)

  • (4) 생애 주기에 따른 죽음, 자살사, 사고사, 뇌사 등 다양한 죽음 유형(7, 8, 9, 10, 20장)

  • (5) 생애 말기 의료결정을 위한 개념,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생명윤리와 관련된 쟁점들(11, 12, 13, 14, 19, 21장)

  • (6)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명의료결정법 및 임종기 환자 돌봄(15, 16, 17, 18, 26, 27, 28장)

  • (7)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를 위한 준비(23, 24, 25장)

  • (8) 사망진단서, 장례와 유족 돌봄 등 죽음 이후의 문제들(29, 30, 34장)

  • (9) 죽음교육의 역사와 의료인을 위한 죽음교육(31, 32, 33장)

  • (10) 임상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죽음 관련된 사례 토의(35, 36장)

죽음학은 크게 일반죽음학(general thanatology)과 응용죽음학(applied thanatology)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죽음학이 ‘죽음의 이해, 죽어감과 임종 결정, 상실․비탄․애도’ 등에 대해 다학제적 접근을 하고 있다면, 응용죽음학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생애 말기 환자에 대한 돌봄 등)와 죽음을 규정하는 윤리, 법률 및 정책(낙태, 안락사, 뇌사, 감염병 대책 등)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의학적 돌봄과 관련 주제에 주안점을 두고 일반죽음학과 응용죽음학을 포괄하고 있다. 즉 기존에 출간된 죽음학 서적과 차별적으로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의학교육 및 임상현장에서의 이론적, 실천적 입장에서 서술하고 재해석하였다. 또한 오랫동안 임상현장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다양한 사례를 경험하고 환자들의 임종 돌봄에 참여했던 임상 의사들이 임종 준비 및 임종 현장에서 고려해야 할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주요 현안과 자세한 해설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강점이다. 이러한 관련 사례 소개와 모음은 의과대학생은 물론 전공의 교육현장에서 진지한 토론에 직접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학 교실”은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궁금한 주제를 쉽게 찾아보거나 교육이나 임상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핸드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의료계에서 고려해야 할 죽음학의 다양하고 방대한 측면을 논의함으로써 의료계에서 다루어야 할 죽음학의 큰 외연(boundary)을 그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한 장별 목차 외에 세부 목차와 색인이 함께 제공되어서 독자가 구체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찾아보기 쉽다. 또한 각 주제마다 핵심 내용과 쟁점을 체계적이고 요약적으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학 입문용으로 유용하다. 각 장마다 있는 관련 주제의 참고문헌은 추가적인 연구나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학습목표”와 “학습활동/토론문제”, 더 많은 “사례”가 추가된 개정 증보판이나 추가적인 보조학습 자료의 발간을 기대해 본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책 서두의 첫 문장은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생사불이(生死不二)임을 확인시켜 준다. ‘어떻게 죽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삶의 방향을 향해 살 것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인 것이다. “죽음학 교실”은 죽음과 죽어감을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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