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종주의자가 되는 법
How to Be an Antirac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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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인종문제는 한국 또는 의학교육과는 상관없는 내용이라고 바로 책을 덮을 의학 교육자들을 생각하며 이 북리뷰를 준비하였다. 필자는 지난해 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학회에서 이 책의 저자가 기조연설자 중 한 분으로 소개되면서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조연설이라 인터뷰어가 질문하고 연자가 대답하는 형식이었고, 사실 이 형식으로는 저자의 생각을 깊이 있게 접하는데 한계가 느껴져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배우게 된 내용은 그 기조연설을 넘어서는 저자의 깊은 성찰이었고, 북리뷰 요청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하였다.
책의 제목이 나타내듯이 이 책은 반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 실체는 ‘인본주의’이며 이를 저자는 남자 흑인으로서 겪은 자신의 개인적 성장과정과 인종주의적(반인본주의적)사고로 인한 내면적 분투, 그리고 자아 정체성의 발견과 변화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개인의 경험과 발달과정을 저자의 풍부한 역사학, 사회학, 정책학 등 인문사회학적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어, 인간의 배움과 발달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교육자들에게는 인종주의적(반인본주의적) 교육환경과 정책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고, 이를 지양하기 위해 교육현장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종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반인종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인종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이를 여러 가지(사회적, 문화적, 생물적, 인종적, 공간적, 계층적, 성별, 성공/실패 경험 등으로 인한 ‘우열집단의 구분 및 동화정책’) 각도로 분석 설명하고 있다. 즉 인종주의적(반인본주의적) 사고는 역사적 맥락에서 사회적 힘(power)과 정책(policies)에 의하여 생성되고 지속되는 이념으로 개인의 특성과 문제를 집단의 특성과 문제로 일반화하면서 반인본주의적 생각, 행동, 그리고 정책을 지속시키는데 용인하며 그로 인한 power hierarchy를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흑인은 게으르고, 무식하고, 위험하다라는 일반화된 생각, 그리고 그로 인한 비인본주의적 행동과 정책으로 인한 수많은 흑인들의 생명이 어이없게 죽어간 사례는 너무도 많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중국인은 바이러스라는 어이없는 일반화로 수많은 동양인들이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이유 없이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요즘 흔히 접할 수 있다. 이에 어떤 한국사람은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고 적극 표현하면 이러한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반인본주의적 일반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또 하나의 인종주의적 사고이다. 이는 미시적인 사회적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어느 지역(또는 학교) 출신을 알게 될 때 ‘그 지역 출신은 수준이 떨어진다’라든가, 성소수자들은 ‘문란하다’라는 일반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엄마(또는 아빠) 없는 아이들은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 여성은 결혼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커리어는 끝이다 등 개인의 사례를 특정 그룹으로 일반화시킴으로 해서 야기되는 소외 및 불평등, 즉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잘못된 순위(false hierarchies of human value)를 매기는 것이 뿌리 깊게 전이된 것이 인종주의의 실체이다. 이는 주도집단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비주류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그 주도집단의 가치에 동화되도록 요구하는 것이 인종주의적 과정으로 나타난다. 인종주의적 실체를 의학교육에서 살펴본다면 수능점수에 따라, 출신학교 또는 가정환경에 따라 학습자 집단을 구분하고 훌륭한 의사가 될 가능성을 연결 지어 서열화하는 것, 여자 교수 또는 여자 의대생은 외모가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짓는 문화, 환자의 사례를 통해 학습하는 교과과정에서 에이즈와 성병과 관련된 대부분의 케이스는 환자가 성소수자인 것으로 설계하여 편견을 유지·지속시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에 대하여 의학교육 과정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듯, 저자가 목표로 하는 것은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법’을 알리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우선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I am not racist’와 ‘I am an antiracist’의 차이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종주의는 사회의 ‘암’(cancer)으로 비유되며 적극적인 치료를 요구하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단순히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회적 암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대로 두는 것에 해당하기에 또 다른 형태의 인종주의적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즉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은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 위하여 문제를 인정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고, 정책적, 행동적 변화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설명한 다면적인 인종주의적 실체는 역사적, 정책적 흐름에서 개인의 일상적 삶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이러한 생각들을 내면화하고 따르게 된다. 따라서 개개인은 문제를 접하게 될 때 매우 불편하며 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문제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의 시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흑인 남성으로서 아이러니하게 자신도 얼마나 실망스러운 인종주의자적 생각과 행동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고백하며 자신이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은 지금 현재도 진행되는 지속적이고 연장선 상에 있는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의 힘을 인지하고 반인종주의적 정책을 의식하고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 또는 ‘정책’의 불가항적 힘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본 이슈의 특집 주제가 의사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임을 고려해 볼 때 필자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즉 사회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육환경에서 의대생들이 다양한 개인적 자아 정체성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의사가 되어가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 또한 진정한 자아(true self)와 동반하는 유의미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서열화 또는 불평등한 교육환경 또는 정책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 즉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법(how to be an antiracist)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교육자의 중요한 임무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