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심리학과 교육학의 역사 속에서 행동주의 학자들이 우리의 정신 혹은 마음(mind)을 ‘검은 상자(black box)’로 명명한 이후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나 우리는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여 왔다
[1]. 뇌 과학의 발달을 통해 비록 아직은 한계가 있으나 우리는 더 이상 정신을 그 내부를 알 수 없는 검은 상자로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절대적 지식의 구조나 인식 외에도 우리의 사상과 행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 즉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동의하여 왔다. 교육에 관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바로 학문의 분화와 다양한 관점의 노력을 허용하는 것이자 주로 교수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절대적 지식의 전수를 넘어 학습자 중심의 다양한 시도나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마찬가지로 의학교육에 있어서도 다양한 학습이론을 논의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 실용적 관점 모두에서 매우 의의가 있는데, 이는 이론에 근간을 둔 교육적 시도와 실천적 교육행위에 대한 나름의 설득력을 갖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의학에 대한 여러 질문과 해답들이 끊임없는 도전적 탐구와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에 의한 것처럼 의학교육자들이 주로 듣게 되는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의 해답 또한 이론과 증거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의학교육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현상이나 노력, 그리고 그 결과물들에 대한 근거를 학습이론이나 교수이론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우리의 학생들이 보다 나은 학습 성과를 달성하고, 발전적인 자기계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학습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학습기제 및 원리, 즉 기술적인 이론들을 파악하여 처방적인 수업이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2].
1) 특히 구성주의의 핵심적 개념인 지식의 구성과 그 주체, 즉 학습자와 학습자의 지식형성과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교육을 행하는 모든 교수자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에 저자는 인지적 구성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인지적 구성주의의 개념 및 관련 이론들에 대해 개괄하고, 인지적 구성주의에 근거하여 의학교육에서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인지적 구성주의에 근거하여 미래 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인지적 구성주의의 등장
인지적 구성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동주의 이후의 학습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Mukhalalati와 Taylor
[3]는 성인학습이론에 근거하여 보건의료 전문가 교육자를 위한 가이드를 제시하였는데, 총 436편의 학술논문에서 추출한 110편의 논문을 기반으로 성인학습이론들을 유목화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은
Table 1과 같다.
Table 1.
Categorization of learning theories
Learning theory |
Subcategory |
1. Instrumental learning theories |
Behavioral theories |
|
Cognitivism |
|
Experiential learning |
2. Humanistic theories or facilitative learning theories |
Self-directed learning |
3. Transformative learning theories |
Critical reflection |
4. Social theories of learning |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
|
Situated cognition |
|
Communities of practice |
5. Motivational models |
Self-determination theory |
|
Expectancy valence theory |
|
Chain of response model |
6. Reflective models |
Reflection-on-action |
|
Reflection-in-action |
7. Constructivism |
Cognitive constructivism |
|
Socio-cultural constructivism |
이 유목에 따르면, 행동주의, 인지주의, 경험주의로 설명되는 도구적 학습이론과 자기주도학습으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학습이론, 비판적 성찰로 대표되는 변혁적 학습이론, 근접발달영역, 상황인지, 공동체실습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학습이론, 자기결정이론과 기대이론으로 대표되는 동기학습이론, 행위에 대한 성찰과 행위 동안의 성찰로 대표되는 성찰학습이론, 그리고 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문화적 구성주의로 대표되는 구성주의의 7개 유목의 학습이론들이 정의되었다.
반면, 보다 간명하게 학습이론을 구분한 Doolittle와 Camp
[4]는 1800년대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개의 학습이론이 교육을 장악하였는데, 첫 번째가 학습을 자극과 반응으로 정의하는 행동주의(behaviorism), 두 번째가 정보처리로 학습을 정의하는 정보처리(information processing) 혹은 인지주의(cognitivism), 그리고 세 번째가 지식의 구성으로 학습을 정의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라고 하였다. 그 첫 번째인 행동주의는 Skinner가 제시한 바 있는 ABC 모델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5]. 이는 특정 행동(behavior)에는 선행요인(antecedents)과 결과(consequences), 즉 자극과 반응이 수반됨을 의미한다. 이때 행동주의자들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대상의 사고나 정신과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생성된 메타포가 바로 ‘검은 상자(black box)’라는 용어이다. 행동주의자들은 인간 학습에 대하여 관찰 가능한 자극과 반응 혹은 행동의 선행요인과 이에 따른 행동결과 등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러한 자극과 반응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인간의 내적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간의 인지과정은 행동주의자들의 관찰대상이나 연구대상이 아니며, 들여다볼 필요가 없거나 그 내부를 알 수 없는 검은 상자에 해당했다. 따라서 행동주의자들은 학습자의 주관적 이해나 자기주도적 속성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학습현상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행동주의 이론으로 설명되며, ‘칭찬’이라는 단어와 ‘보상’이라는 단어가 계속 사용되는 한 행동주의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학습자를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행동주의에 대한 반발, 혹은 상대적 관점의 연구 필요성은 바로 ‘검은 상자,’ 즉 ‘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정신과정, 인지과정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인지주의자들은 정보처리와 기억, 사고와 추론, 문제해결 등 인지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게 되며, 이에 따라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학습 매커니즘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인지주의자들의 노력으로 검은 상자가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하자 또 다른 새로운 탐색과 도전이 일어나게 된다. 즉 인지주의 이론의 바탕에 어떠한 철학적, 인식적 해석이 주어지는가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지식의 형성과 그 주체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로써 구성주의가 도래하게 되고,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시대, 인식론의 틀이자 심리·교육학적 이론의 하나로 구성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성주의의 등장으로 인한 철학적 인식론의 변화는 교육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는데, 절대주의와 객관주의 지식이 강조되던 구성주의 이전의 시대와 개인적으로 구성되는 지식과 상대주의적 관점이 강조되는 구성주의 이후의 시대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육의 키워드로서 구성주의의 영향력은 거세고 또한 거대했다.
무엇보다 구성주의는 철학적 인식론이자 심리이론이다
[3]. 심리학에 근거를 둔 교육학에서는 구성주의를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실천적 교수이론과 학습이론으로 다루게 되며, 이를 통해 교육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 처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구성주의가 전개되는 데는 크게 2가지 관점이 적용되는데, 지식의 구성방법에 대한 관점 차이에 따라 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로 나뉘게 된다. Chu
[6]는 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 모두에서 아동의 발달에 따라 지식의 구성과 재구조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점은 동일하지만, 인지적 구성주의자들은 학습자의 생리적·심리적 매커니즘을 강조하며,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은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영향요인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인지적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Jean Piaget와 사회적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Lev Semyonovich Vygotsky 모두 아동발달과 관련된 학습이론을 제시하였으며, 지식의 형성과 학습의 과정에 대하여 객관주의가 아닌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함으로써 구성주의를 철학적 패러다임인 동시에 심리·교육학적으로도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만들었다.
특히 우리가 인지적 구성주의를 논의하기 위해서 프랑스계 스위스인이면서 발달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학자 중 한 명인 Jean Piaget를 소환하는 것은 구성주의 학습이론이 갖고 있는 아동발달과의 연계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는 아동이 인지적 발달과 학습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대상이라는 점과 이 대상들에서 지식 구성의 속성들이 비교적 명료하게 관찰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Piaget의 이론들이 갖는 주된 설득력은 주로 아동의 지식구성, 인지적 발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미리 강조하는 바이다.
인지적 구성주의의 주요 개념과 원리
흔히 인지적 구성주의의 대표자로 Piaget를 지목하게 되는데, Piaget
[7]는 학생들을 ‘작은 과학자(little scientists)’로 보았다. 그가 말한 작은 과학자란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기 위해 개념적 구조를 만들고 열심히 학습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이다. Piaget는 사물이나 정보 등을 인식하는 개인과 그 개인이 어떻게 지식을 구성하는지에 주된 관심을 가졌고, 인간이 즉각적으로 사용 가능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들 자신의 지식을 스스로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8]. 즉 인지적 구성주의는 개별 학습자들이 스스로, 그리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구성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인지적 구성주의가 생리적·심리적 매커니즘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Piaget가 지식의 구성과정을 생물학적 균형, 즉 평형유지의 개념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의 구성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도식(schema),’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modation),’ 그리고 ‘평형화(equilibration)이다
[7-
9]. 먼저 학습자는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인 ‘도식, 스키마’를 갖게 되는데, 이는 생각이나 행동의 조직된 패턴으로, 인간은 아동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물리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까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스키마를 갖게 된다
[10]. Piaget
[7]는 아동들이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 등 4단계의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동화와 조절을 통해 스키마를 보다 많이, 견고하게 구성하게 된다고 하였고, 이때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이 언어라고 하였다.
여기서 동화와 조절은 새로운 정보 혹은 지식을 자신의 스키마에 접목시킬 때 일어나는 것으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그 정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존의 스키마와 비교하여 발생하는 불균형 또는 불평형상태로 인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제를 의미한다
[8]. 만약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스키마와 일치하면 학습자는 동화를 통해 적응하게 되며, 반면 새로운 지식이 기존의 스키마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지식을 동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스키마를 변화시키게 되는데, 이러한 노력을 조절이라고 한다. 동화와 조절 모두 심리 내적으로 발생하는 평형상태의 유지, 즉 인지적 갈등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평형유지 관점은 우리의 지식습득과정도 일종의 생존적 기제이며 지식의 관점에서 도태되는 존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생존하는 존재가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스키마를 적절한 형태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쉽게 동화하지 못하는 존재는 퇴보되고 퇴화할 것이라는 전제는 우리가 왜 평생 경험과 학습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
Piaget의 이론은 기억 속에 있는 기존 지식, 즉 스키마에 대한 전제와 새로운 지식과 기존 지식을 적합화하는 과정으로 학습을 정의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이들이 학습자에게 어떠한 정보를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기반과 실천적 이슈들을 갖게 만들었다. 실제로 교사나 교수들은 교육내용 및 자료의 구성에 있어 학습자의 기존 지식수준을 탐색하고, 이에 맞게 적합한 수준의 인지적 갈등, 즉 불평형화를 경험하게 하여 동화와 조절활동이 학습자 내부에서 일어나도록 자극하는 방식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학습자들이 불평형화를 경험하여 스스로 인지적 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하게 하는 것과 함께, 학습자들이 더 잘 동화할 수 있는 익숙하고 관련성 높은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편안하게 지식을 습득해 나가도록 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지식을 구성하는 두 가지 방법 모두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티칭 스킬을 발휘하는 것도 교수자의 중요한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스키마, 동화와 조절, 그리고 평형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어 개별 학습자들 간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흔히 개별학습(individual learning)을 적용한 e-러닝의 교수법도 인지적 구성주의의 개념하에 접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지적 구성주의 이론에 기반한 교수-학습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철저히 학습자 중심의 교육철학에 기반하며, 학습자의 인지와 심리적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학생 중심의 교육(student-centered education)’이란 용어는 인지적 구성주의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만들어진 원칙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 많은 교육학자들이 학습자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지를 강조하는지도 인지적 구성주의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인지적 구성주의 관점에서의 의학교육
고등교육의 현장에서는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집체교육을 여전히 고수하면서도 학생 개개인의 속성과 능력에 맞는 맞춤형, 개별화 수업 등에 대하여 오랜 기간 강조해 왔다. 앞서 기술한 인지적 구성주의의 기본 개념과 원리는 교육계에 많은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켰거나 혹은 그 전환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지적 구성주의는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강의수업에도 적용 가능하고, 화려한 멀티미디어와 다양한 능동학습(active learning) 기법에도 적용 가능하다. 모든 학습의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학습이론이자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주체, 즉 학습자 자체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행동주의와 인지주의가 여전히 적용되는 교육현장에서 인지적 구성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기술해 보고, 특히 의학교육에 있어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기술해 보고자 한다.
1. 학습자
Dennick
[11]은 의학교육에서의 구성주의에 대한 25년간의 성찰을 담은 글에서 우리의 경험이 기존의 지식 또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동화 또는 조절함으로써 획득된다고 주장하였던 Piaget의 관점을 지지하였다. 이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이전의 경험 혹은 지식과의 동화와 조절에 기인하며, 그 인지적 과정의 결과로 지식이 획득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화와 조절에서의 불평형상태를 문제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설명과 질문을 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여러 제안과 가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종의 상상력 혹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보았다. 즉 개개인 모두가 과학자로서 과학적 추론과 추상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마치 과학자들이 그러하듯 기존의 지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해석하고 또한 구축해 나감으로써 세상의 의미를 추상해 나간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은 인지적 구성주의자의 일관된 관점이자 주장으로 우리가 학생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학습자의 전제를 나름의 지식구조를 갖고 있는, 혹은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관점은 아동발달에서 기인한다. 의학교육에 인지적 구성주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습자들이 성인임을 고려하여 성인교육의 관점이 요구된다. 우리가 통제하거나 점검하고자 하는 일련의 교육과정과 평가들은 성인 학습자를 대하는 과정이라기에는 아동 청소년의 교육과 닮아 있다. 성인 학습자의 특성은 아동 청소년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으며, 젊은 성인들과 나이든 성인들의 학습에도 차이가 있다. 젊은 성인집단은 나이든 성인집단에 비하여 정교화나 조직화 같은 깊은 수준의 정보처리를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또한 일반적으로 성인 학습자들은 아동 청소년들과는 달리 내재적 동기가 유발되어 학습에 참여하는 경향과 자기발전 욕구가 높고 학습에 대한 흥미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일반적으로 성인 학습자들은 학습이 왜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있으며, 학습자로서의 자아개념을 갖추고 있고, 학습자의 경험에 대한 역할을 인식하고 있으며, 학습할 준비와 태세, 동기를 갖추고 있다
[13]. 의학교육의 대상자를 성인 학습자로 인식하는 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인지적 잠재성을 발휘하여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기본적인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의과대학생들의 학습 준비도와 동기를 높이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함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Ausubel
[14] 또한 학습에서의 흥미, 동기요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학습자의 지식구조화와 인지적 구성과정에서 학습자의 적극적 참여가 없다면 동화와 조절 자체가 효과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내용과 교육성과에 집중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평가하는 것에 전력을 다해온 지금까지의 노력 일부를 의학교육을 통한 학습경험과 동기에 기울인다면 제대로 된 성인 학습으로서의 의학교육에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또한 의학교육의 엄청난 학습량과 높은 학습강도를 고려했을 때 내재적 동기의 발현 및 호기심과 적극적 학습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의학교육에서의 내재적 동기와 호기심은 지식구조 간의 관계성에 기인할 수 있다. 학습자가 갖고 있는 인지구조를 탄탄하게 해주고 확장해줄 수 있는 도구로서의 관계성, 지식과 배경지식과의 관계성, 목표와 결과를 예측하고 동기화해주는 관계성의 회복이 의학교육에 있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한 관계성을 구축해주고 유지해주는 주요한 기제는 바로 ‘통합교육’이라 할 수 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그리고 인문사회의학 간의 유기적 연계성은 분절된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통합적인 지식의 구성, 그리고 경험의 축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배우고 있는 학습내용들이 이후에 어떻게 의료상황에 적용되며, 사회나 공동체를 위해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따라서 왜 통합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갖는 구성원들이 있다면 바로 인지적 구성주의에 의해 설명되는 지식의 구성적 측면과 함께 지식의 관계성 및 연계성이 갖는 강력한 학습효과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끔 학습자들을 하얀 백지에 비유한다. 어떤 디자인의 도식을 만들어 밑그림을 그리고, 어떤 색채를 입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긍정적인 시각에는 다소 모순되는 통제적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 마치 교육의 책임이 교육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교수자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학습자의 주도성과 노력보다 교수자의 역량에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과 같다. 최소한 인지적 구성주의에서는 학습자를 하얀 백지에 비유하지는 않는다. 어설프거나 오개념으로 채워질지언정 그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종이는 그 크기와 모양, 색채, 그리고 담고 있는 내용 모두에서 다르다는 전제를 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습자가 어떻게 스키마를 형성하고 있는지, 어떤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지, 어떤 오개념을 갖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절차가 필요하게 된다. 즉 형성평가와 같이 학습자의 수준과 교수자의 수행력을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인지적 구성주의의 첫 번째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형성평가는 ASK2019 (Accreditation Standards of KIMEE 2019) 의학교육 평가인증기준에 기술되어 있는 하나의 성가신 평가가 아니라 교육의 과정에서 학습자의 내적 구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핵심 과정이 된다
[15].
2.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Hunter
[16]는 학습자들의 이전 지식을 자극하고 동화와 조절을 일으키게 하며,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학습성과를 달성하게 하는 데 있어서 교수자의 역할이 지식을 전달하는 중심자적 역할이 아니라 학습자가 적극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촉진자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사회적 구성주의에서 강조하는 바이기도 한데, 인지적 구성주의에서 말하는 촉진자의 역할은 내적 인지를 촉진하고, 환경에 대한 해석과 새로운 지식구조의 성립을 돕는 형태의 촉진을 의미한다.
의학교육이 이루어지는 모든 강의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지 않는 한, 상대적인 순위 혹은 점수를 부여하게 된다. 마치 학생들이 점수라는 한 개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트랙 위의 경주마
2)인 것처럼 일정한 지식을 부어 넣고 쏟아내도록 훈련시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들이 각기 다른 종이에 각기 다른 도식과 색채를 입혀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교수자의 역할이 내적 지식구성의 촉진자임을 인식할수록 수업은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수업의 다양성을 고심하게 될 것이며, 수업내용을 내가 가르쳐야 하는 것에서 나의 학생들이 학습할 대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학습성과를 기술하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전의 목표기술방식은 교수자가 주어가 되어 ‘무엇을 가르친다’ 또는 ‘무엇을 학습 시킨다’와 같은 형태로 기술되곤 했다. 그러나 이미 거의 모든 의과대학에서 학습목표 또는 학습성과를 기술할 때, 학습자를 주어로 하며 ‘이 수업이 끝났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다’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과 관련하여 왜 번거롭게 기존의 학습목표를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줄 필요가 있다. 인지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학습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교육활동 자체를 학습자 중심으로 전환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선언적으로 표현하는 이 언어표현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인지와 인식이 새롭게 구성되었음을 인정하자고 말해야 한다. 마치 Piaget가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교수자가 학습자의 인지적 구조에 대해 탐색하고, 스키마의 형성과 변형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학습자의 인지적 구성을 돕는 형태로 교육자료와 교육내용, 그리고 수업의 형태가 구성되어야 함을 이론적으로 제시해준 인지적 구성주의 학자가 바로 David Paul Ausubel이다. Ausubel
[17]은 새로운 학습내용이 학습자의 기존 인지구조와 의미 있게 연결되도록 지도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학습할 내용과 학습자의 인지구조 간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나가는 학습인 유의미 학습을 제안하였다. 유의미 학습의 핵심은 학습자들이 장기간 획득한 지식을 파지하고 쉽게 인출하며, 학습내용을 쉽게 전이함으로써 다른 학습장면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유의미 학습은 기계식·주입식 수업과 단편적인 지식 암기를 지양하고 학습자의 이해와 지식의 확장이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Ausubel
[17]은 유의미하지 않은 부적절한 학습과제, 학습자의 기존 지식 부족과 동기부족이 유의미 학습을 저해한다고 하였으며, 유의미한 학습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임의적이거나 적합하지 않은 학습과제를 배제하고, 학습자의 인지구조에 적합하고 관계성이 높은 과제(relevant anchoring idea)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Ausubel
[17]의 주장은 교육내용의 구성과 교육과정의 구성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의학교육은 타 전문 학문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학문적 구조와 세부 전문화로 인해 전체 교육과정의 전개를 시퀀스와 스코프
3)에 맞게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는 의학교육과정을 설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인데, 독립적이고 세분화된 전공영역의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해당 영역의 모든 내용이 중요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유의미 학습이 일어나도록 뼈대가 되는 기본 지식을 핵심 내용으로 도출하는 과정부터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또한 합의된 핵심 내용을 습득하게 하는 것과, 이후의 지식을 범위와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치하는 것, 그리고 실제 운영 시 학습자의 동기를 유지하면서 파지와 전이가 쉽게 일어나는 효과적인 학습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의학교육과정은 통합교육과정을 추구한다. 학문적 연계성을 고려하여 배치하는 것만 해도 어려운 과제인데, 심지어 그 연계성을 극대화하여 자연과학과 기초의학, 임상의학과 현장 중심의 임상경험들이 모두 일맥상통하도록 구성하고 배치하는 노력은 흔히 말하는 아트, 예술에 가깝다. 만약 통합교육과정이 제대로 구성되었다면, 그 대학의 교육과정은 적어도 각자 진행되는 분절된 교육에 비해 학습자의 지식형성과 구성에 훨씬 도움이 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며, 인지적 구성주의의 효과성이 반영된 학습자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학습자가 광범위한 학습내용을 통합적으로 수용하고 전이시킬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인 학습활동과 경험들로 구성될 것이다.
이제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서 교과단위의 수업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실제 의학교육의 내용은 그 기본 전제에서부터 이미 유의미 학습의 대상으로 매우 적합하다. 왜냐하면 의학교육은 ‘1차 진료가 가능하도록’이라는 전제에 따라 모든 학습내용이 이후 ‘의료상황에 적용 가능하도록’ 교육하고 학습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학습할 내용은 현장에서 일어날 일들과 이후 자신들이 수행할 일들의 근간이 되는 의미 있는 교육내용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끔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다수 교수진이 참여하는 강의의 교육내용들은 때로 분절되어 있고, 관계성에 대한 설명 또한 인색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각 대학들은 교과목 책임교수를 선정하고, 통합교육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사전회의나 사후회의 등을 통하여 통합교육을 운영하는 교수진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을 권고하고 있다. 교육내용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교수진 간의 협력, 즉 전체 교육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ASK2019 기준에서 의과대학 교수 모두가 전체 교육과정을 숙지할 수 있는 정책이 있고, 이와 관련된 교수활동을 지원하도록 기본기준을 정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의학교육은 더 이상 어느 개인의 교육과정이나 교과목으로 정의될 수 없다. 얼마나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협력적으로 운영되는지에 따라 그 성과가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지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의학교육에서 가장 먼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은 바로 그 교육내용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있는 관계성을 강조하고, 그 관계성을 깨닫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관계성에 근거하여 수업내용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Ausubel
[14]은 이러한 관계성의 교육을 위해 크게 3가지의 동화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3가지 동화 방법은 기존의 지식이나 개념, 원리에 새로운 지식을 아우르는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상위개념을 학습하는 것, 기존에 학습한 일반적인 개념의 하위개념을 학습하는 것, 그리고 기존에 학습했던 개념들과 유사한 수준의 개념을 결합하듯 학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교육에서 전개되는 수업 또한 이러한 관계성의 확장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한 차시의 수업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그 전의 수업과 그 이후의 수업과 연계된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수업내용들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개념과 원리에 종속, 확장, 연계되는지를 밝히는 것은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매우 효과적인 인지구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는 정교화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Charles M. Reigeluth의 정교화 이론에 따르면 단순에서 복잡으로, 선후학습요소의 계열화, 요약자의 제시, 종합하기, 비유 사용하기, 인지전략 자극하기, 학습자 통제 등의 정교화 방안이 제시되며, 이 모든 정교화 전략들은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안이자 가장 기본적인 교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18].
Lim
[19]은 개념이해를 위한 수업설계에서 Reigeluth가 제시하였던 수업설계이론을 근간으로 형성적 연구를 실시하였다. 수업의 결과, 방법, 조건뿐만 아니라 동기전략, 제시전략, 연습전략, 계열, 그리고 학습자 통제요인에 대한 검토를 통해 상위-등위-하위-절차에 대한 학습 제시가 효과적이라는 점과 절차에 대한 학습 또한 설명-시범-평가의 순으로 제시되는 것을 학습자들이 선호함을 밝혔다. 수업의 제시방법을 안내하는 것과 학습자가 순서와 속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통제성을 가질 때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습과 평가, 그리고 피드백은 효과적인 전략으로 인식되었다. 계열, 즉 경험의 순서와 요약 또한 효과적으로 인식하였으며, 개념의 학습에 있어 개념 자체에 대한 학습 이전에 개념을 포함하는 사례의 제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지금껏 우리가 수업 시 현장의 예를 더 많이 제시해주는 것과 교수자의 경험이나 연계된 사건들에 대한 언급, 그리고 수업내용들의 연계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것 등에 대한 요구를 받아왔다면, 그 또한 모두 인지적 구성주의의 근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의학교육 수업 중 앞서 기술한 정교화 전략 중 몇 가지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교수력 향상을 위한 교수개발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면 이제 학습자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인지적 구성을 촉진하기 위한 정교화 전략부터 상세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인지적 구성주의는 우리의 인식론을 넘어 학습이론으로, 그리고 실제 처방적 교수법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결 론
이제 의학교육에서 인지적 구성주의를 어떻게 확장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기술하고자 한다. 교육학계에서 구성주의 열풍이 불었던 것과는 달리 의학교육에서 구성주의나 인지적 구성주의를 탐색한 연구는 다소 부족하며, 주로 인지치료나 심리치료영역에서 인지이론의 관점에서 일부 이론들이 다루어졌다. Dennick
[11]은 구성주의와 뇌과학을 연계하여 교육, 의사소통, 심리치료과정에 대한 의미를 탐색한 바 있으며, Poletti 등
[20]은 의료상황에서 인지적 구성주의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심리치료에서의 구성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질문지 사용에 대한 탐색적 연구를 시행하였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의학교육에서는 인지적 구성주의 보다는 인지이론과 인지발달연구들이 주로 진행되었다
[21,
22]. 사회적 상호작용 관점에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상호작용 등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 사회적 구성주의에 비해 인지적 구성주의는 검은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 행동주의자의 관찰태도와 같은 견지를 갖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성주의 자체를 논의하는 과정은 철학적 인식론과 학습이론을 함께 다루는 것으로, 왜 우리가 그동안 학습자 중심의 여러 학습이론들이나 방법들을 제시하여 왔는지에 대한 많은 해답을 찾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지적 구성주의를 탐색하는 일은 매우 즐겁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인지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학습자는 기본적으로 지식의 구조를 나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은 철저히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이 포괄적이고 일반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는 학습자에게는 유의미 학습이 일어나기가 쉽고 더 풍요로운 지적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동화와 조절이 일어날 자료들이 풍부하므로 제대로 된 과학자로서의 인지적 노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학교육의 6년 기간 학습자들에게 기반이 되는 지식구조를 어떻게 갖추게 할 것인가? 어떻게 기반 지식구조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도록 자극하고, 얼마나 많은 스키마를 어느 수준까지 형성하도록 도울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전략적이고도 정교하게 교육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들이다. 이는 때로 역량기반, 성과기반 교육과정, 또는 임상표현(clinical presentation) 기반의 교육과정 등으로 정의되고 반영될 것이다. 교육방법적으로는 집단토론, 저널클럽, 과정 포트폴리오의 개발, 비판적 평가(critical appraisal)와 같은 교육방법들 모두 인지적 구성주의에 입각하여 의학교육에 반영될 수 있다
[3]. 또한 성인 경험학습이론에 근거하여 보건의료 전문가 교육에도 인지적 구성주의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Kolb의 모델을 적용한 것으로 구체적인 경험, 관찰과 성찰, 추상적 개념화와 일반화,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서의 개념 적용 및 검증의 네 가지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지식을 구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23]. 지금 이 순간에도 학습자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성찰하며, 개념화와 검증 등 지식을 구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학습자료와 교육방법, 그리고 교육내용들로 인해 그들의 지식구조가 달라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즐거움을 되찾고 지속적으로 교육활동을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것이다. 인지적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의학교육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료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지식 도입 등을 교육의 내용과 학습경험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세상과 지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인지적 구성주의에 입각한 다양한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반면,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교수자의 역할에 대하여 인지적 구성주의자로서의 성찰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0년의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강의방식의 교육을 도입하면서 교육환경의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비대면 교육은 성공 혹은 기존 대면 교육과 유사한 성과를 획득하고, 어떤 비대면 교육은 실패 또는 좌절을 경험할 것이다. 본 저자는 의과대학에서의 비대면 교육에서도 그 성공과 실패 경험의 근간에 인지적 구성주의에 입각한 성찰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놀랍게도 학습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하거나 교육 내용을 압축하여 콘텐츠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실시간 화상교육 등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의학교육은 하나의 도전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본다. 본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COVID-19으로 인한 의학교육에서의 대처와 이에 대한 성찰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습자들이 갖고 있는 기존 지식의 양과 수준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다. 대면접촉에 의한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지면서 학습자들의 속성과 예측되는 반응 등을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성찰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수준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교육의 양과 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우리가 믿는 지식의 전달체계가 얼마나 지루할 수 있는지, 혹은 무용할 수 있는지 또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직접 만나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내적 구조와 지식의 구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비대면 실습에 대한 이슈가 나타나면서 각 대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면 실습을 대체할 방식을 탐색하였지만, 온라인 실습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과 같은 사전 준비된 프로그램들로 대체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방법도 현장에서의 실습만큼 만족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 자명하다. 시스템의 한계나 기술의 부족은 곧 지식전달의 한계나 불편을 야기하고, 학생이 아닌 교수자가 새로운 학습을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애초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학습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은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작은 과학자가 맞는가? 그들 한 명 한 명의 학습적 성과를 내기 위해, Piaget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어떻게 동화와 조절을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들의 지적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고 충족시킬 것인가? 그리고 John Dewey의 방식으로 어떤 경험을 통해 의학과 의료라는 세상을 이해하게 할 것인가?
인지적 구성주의가 갖는 이론적 힘은 바로 앞에서 던진 질문들에 대한 상당한 안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화면 너머의 학생들을 객체화함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학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우리의 콘텐츠와 우리의 노력이 객관화되었다. 녹화된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포인터를 표시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교수자의 교육이 학습자의 학습과 맞닿기 위해서는 철저히 학습자가 보는 관점과 학습자가 이해하는 언어와 지식으로 학습경험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작은 과학자인지에 대한 의심보다는 진정한 작은 과학자로 믿어 줌으로써 그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는 학습경험의 구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개별학습과 자기주도적인 인지구성을 촉진하고, 유의미 학습이 일어나도록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인지적 구성주의는 e-러닝 기반의 교육을 포함하여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실천되는 한 끊임없이 기저이론으로 활용될 것이다. 따라서 학습자의 지식구성과정을 인식하고 이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교수자의 노력 또한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마치 학습자들이 끊임없이 지식을 구성해 나가듯 교수자 또한 교육과 학습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의 또 다른 대상자로서 환자들도 자신의 질병과 자기 자신의 이해를 넓혀 나가고 있는 학습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에 환자와 의료활동을 기반으로 인지적 구성주의가 갖는 의미 등에 대한 추후 연구도 제안하는 바이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신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이영환 교수님,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이태희 교수님, 권미혜 교수님, 그리고 박영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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