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것은 의학교육의 오랜 과제이다. 좋은 의사란 의료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임상능력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라면 갖추어야 할 올바른 태도와 역할을 포함한다. 의사에게 이러한 덕목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들이 임상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인일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환자와 그 가족들까지 안녕과 복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
2].
최근 의과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학생들의 올바른 태도 함양을 목적으로 한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더욱 가속화한다
[3-
5]. 대표적으로 시험 중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개인의 이익만을 좇고 공동의 협력에는 방관하는 자세 등은 이미 오랜 시간 교수-학생 모두에게 공감되어왔던 문제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해부용 시신(cadaver)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료 성추행 문제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는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적으로 예비 의료인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의과대학 시기는 학생들이 일터로 진입하기 전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기에 이상의 문제상황을 공감하며 개선할 수 있는 교육과정 제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연구에서는 ‘인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통해 좋은 의사되기로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인성교육은 인성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교육의 맥락 속에서 인성의 의미는 이미 확정되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성격과 환경, 해당 조직의 특성에 따라 의미가 새로이 구성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
8]. 영어로 인성은 ‘인간성(human nature),’ ‘성격(personality),’ ‘인격(character
1))’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이 용어는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성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 연구에서 ‘인성’은 ‘한 개인으로서 요구되는 인간다운 올바른 모습, 개인의 삶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특질과 역량’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9,
10]. 이것은 직업인이라는 협의의 접근보다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으로의 접근을 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본 연구는 의과대학의 실정에 맞는 인성교육의 의미를 찾고, 향후 이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설계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교수 및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인 연구내용은 의과대학에서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의과대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성의 요소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인성교육이 교과과정에서 어떤 전략과 형태, 평가방법으로 시행되면 좋을지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얻은 분석자료는 의과대학 인성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수립에 유용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고 찰
이 연구는 의과대학 인성교육에 대한 교수와 학생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의과대학에서 인성교육의 필요성,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인성의 요소,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에서 취해야 할 전략과 형태와 평가방법에 대한 두 집단의 인식을 조사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고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과대학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 두 집단 모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집단의 경우 기초교수보다는 임상교수가 인성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학생의 경우 학년별로 인식의 차이가 있었는데, 고학년보다 의예과 시기에서 가장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의학지식과 임상술기 습득에 매몰되면서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적은 부분에 대한 관심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교수-학생 집단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인식 차이가 있었으며, 교수가 학생보다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현장에서 학생을 직면하는 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들은 스스로의 행동과 태도에 관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인성교육과정이 향후 자신의 태도나 성품을 평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설문 시행 자체에 반발심을 가졌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두 그룹 간 생각의 차이는 향후 교육과정 도입 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교육의 취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성의 요소에 대해 교수, 학생 두 집단에서 공통으로 ‘배려 및 소통’이 가장 많은 응답을 보였다. 그밖에 몇 가지 요소에서 교수-학생 간 응답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교수 응답에서 2위를 차지했던 ‘자기조절’은 학생에서 5위를 차지했다. 교수 응답에서 5위를 차지했던 ‘정직’은 학생의 경우 6위를 차지하였고, ‘지혜’는 학생에게 3위였지만 교수는 6위에 머물렀다. 즉 교수는 학생보다 ‘자기조절’과 ‘정직’을 더 많이 선택했지만 학생은 교수보다 ‘지혜’에 더 많이 응답한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은 학교환경에서 강조되는 성적 중심의 응답이며, 교수는 임상현장에서 필요한 인성 요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의과대학 교육현장에서 교수와 학생 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선행연구의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3].
뿐만 아니라 본 연구결과는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인성교육을 다룬 기존 선행연구의 결과들과 비교하여 논의될 수 있다. Hyun 등
[10]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예의,’ ‘정의’ 등의 요소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고, 상대적으로 ‘자기조절’과 ‘성실’ 등의 요소가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본 연구의 결과에서 ‘자기조절’이 교수 학생 두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는 점과는 대조되는 결과이다. 설문 시행 당시 ‘자기조절’에 대한 세부설명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 정서, 충동 등을 조절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의과대학 교육에서 자기조절은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상의 논의들은 학교 급에 따라, 그리고 의과대학이라는 단과대학 특성에 따른 인성교육 요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이 같은 차이를 고려하여 교육과정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연구결과 중 낮은 순위를 차지한 인성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성’(10위)과 ‘자기존중’(9위) 요소는 교수 학생 두 집단에서 공통으로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본 연구결과 중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인성 요소 설문도구는 인성교육에서 고려될 수 있는 수많은 덕목 중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토대로 우선 선별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요소 하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10]. 가장 낮은 순위를 차지한 ‘시민성’ 요소는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여 공동체와 공공의 선을 추구하려는 의무감’을 의미한다. 최근 의학교육에서는 의사-환자 간 일대일의 관계를 넘어 지역사회를 포함한 공공을 위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의료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교육과정 설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성 덕목이다. 따라서 그 중요성이 왜 낮게 인식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향후 교육과정 설계에서 이들 요소가 배척되지 않도록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교수의 교육경험 유무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성 요소에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교육경험이 있는 교수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자기조절’과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꼽았고, 상대적으로 ‘성실’이 낮은 순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성실’이 학생의 기본적인 태도와 기질이라면, 상대적으로 ‘자기조절’과 ‘사회적 책임’은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즉 자기조절과 사회적 책임은 성실보다는 상대적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느끼기 쉬우며, 따라서 교수의 교육경험이 응답의 차이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를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추후 질적 연구를 통한 탐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인성교육과정 운영에 대해서 교수는 과목 신설을 선호하였고, 반면에 학생은 기존 교과목에 인성과 관련된 요소를 추가하여 교육과정을 수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다. 의과대학 학생의 이러한 인식은 대학생들이 인성교육을 위한 교과과정 운영에 있어 비정규 교과를 통한 별도의 교육을 선호한다는 선행연구와는 사뭇 다른 결과이다
[12]. 본 연구의 결과는 의과대학의 특수한 맥락과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방대한 학업량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교육과정 속에서 교육과정 개설이 학생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예상된다. 실제로 선행연구에서는 의과대학 학생들은 인성, 프로페셔널 등을 강조하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일종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14].
‘인성’ 개념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과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본 연구에서 수집된 주관식 의견에 따르면 ‘인성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 ‘시험을 통한 강제성은 인성교육 본연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이것은 인성이 ‘교육’의 영역에서 논의되었을 때 어떻게 교육되고 평가되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의문과 모호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학계에서도 인성을 둘러싼 개념의 모호성, 교육의 범위에서 논의될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은 여전히 해결이 필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15,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은 ‘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심성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행동특성’이기에 교육을 통해 변화 가능하며 교육과정에 반영될 필요가 있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10]. 따라서 이 같은 인식의 차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교육과정의 개발과 개선에 동시에 참여하여 상호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14].
인성교육을 위한 교수법은 교수 및 학생 두 집단 모두 ‘체험식’과 ‘토의식’을 효과적이라고 인식했지만, 상대적으로 ‘강의식’에는 낮은 응답을 보였다. 인성교육의 평가방법은 교수-학생 두 집단 모두 절대평가방식을 선호하였고, 세부적으로는 pass/fail의 방식이 가장 높았고, ABC와 같이 학점이 부여되는 방식이 뒤를 이었다. 이상의 결과들은 모두 인성이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정량적으로 평가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향후 의과대학 인성교육을 위한 다양한 교육방법과 이에 따른 정량, 정성적 방법들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17].
인성교육을 위한 비교과활동으로 교수, 학생 두 집단 공통으로 봉사, 동아리와 같은 체험형 활동들이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였다. 실제로 국내 여러 대학에서는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각 대학의 건학이념을 반영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18]. 이 과정은 공동체 정신, 사회적 인간관계 형성을 목표로 하며, 비교과활동을 전담하는 별도의 센터나 교육원에서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심리검사 및 상담의 경우, 학생의 심리적, 정서·사회적 발달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비교과 프로그램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자기에 대한 이해 등을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학생들의 긍정적 자기개념의 형성, 스트레스 대처기술 습득 등의 지원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19].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그뿐만 아니라 갓 졸업한 인턴, 전공의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일터 현장경험을 반영한 목소리를 듣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추후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본 연구는 일개대학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연구결과를 일반화시키는 데 제한점이 있다. 향후 보다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본 연구에서 선정하였던 ‘인성’의 요소들이 인성교육의 모든 속성을 망라한다고 하기에는 제한적이다. 뿐만 아니라 다지선다 응답방식으로 인한 결과 해석에 제한이 있다. 예컨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성의 요소를 고르는 설문문항에서 선택지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한 인성 요소 간 중요도를 구분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또한 이 같은 응답방식은 여러 차례 설문을 반복했을 때 동일 답변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설문조사라는 연구방법론에서 기인한 것으로, 향후 질적 연구 등을 통해 교육현장의 맥락을 심층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제한점을 고려하였을 때, 이번 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들이 의과대학 인성교육에 대한 특성들을 일반화하거나 집단 간 차이를 정교하게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가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