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정신(Narrative Spirit)’과 논어(論語)

Narrative Spirit and the Analects of Confucius

Article information

Korean Med Educ Rev. 2018;20(2):120-121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8 June 30
doi : https://doi.org/10.17496/KMER.2018.20.2.120
1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Konyang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Daejeon;
2Department of Nursing, Kyung Dong University, Wonju, Korea
박용익1, 정연옥2
1건양대학교 의료인문학교실
2경동대학교 간호대학

저서: 논어한글역주 세트 - 전3권 -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

저자: 김용옥

출판사: 통나무

출판연도: 2009년

쪽수: 1,887쪽

최근의 의학교육에 환자 중심적이고 쌍방향적이며 수평적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질병 치료를 넘어서 환자에 대한 전인적 이해와 공감능력이 있는 ‘좋은 의사’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의료인문학 과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의료인문학 교육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내러티브 의학이다. 내러티브 의학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의학교육의 목표는 의료인의 경청과 이해 및 존중과 공감능력 그리고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타자성이다[1]. 이러한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의 관점과 가치판단 그리고 이익을 어느 정도는 제한하기 위한 의지와 능력이 전제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비울 수 있어야 한다[2]. 그러므로 내러티브 의학의 핵심가치, 즉 ‘내러티브 정신(narrative spirit)’은 자기 자신을 제한하고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계론적 존재론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3].

내러티브 의학은 의학교육의 새로운 교육방법론으로서 최근에야 비로소 도입되었고, 특히 한국의 의학교육에서는 아직까지 널리 활용되지 않은 의학교육방법론으로 머물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러티브 의학의 바탕이 되는 내러티브 정신도 한국 사회 또는 한국의 의료계 교육에서 새로운 발견이며 가치창출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인의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형성해 왔고 아직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의 핵심가치도 내러티브 정신과 다르지 않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유교의 핵심가치는 인(仁)이다. 문자적 어원이 두 명(二)의 사람(人), 즉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仁을 공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정의하였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克己復禮爲仁, 殺身成仁).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제거하기 위한 조건 또는 그 결과는 자신의 주관성과 집착 그리고 고집과 자아를 제거하는(子絕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것이다. 이러한 仁 실천의 구체적인 행동은 자기가 서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도달하도록 해야 하는(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이타성으로 나타난다. 또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아야 하는(己所不欲, 勿施於人)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어려운 일을 나서서하고 이로움을 뒤로 하는(先難後獲) 희생정신과 공적 정체성이 仁이 지향하는 좋은 사람의 지표이기도 하다.

공자의 仁 사상을 구현하는 핵심요소는 忠과 恕이다. 논어에서 사용되는 忠의 의미는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과 ‘타인에 대해서 몸과 마음을 다하는 태도(盡心盡己),’ 즉 진정성이다[4]. 恕는 같을 如와 마음 心으로 구성된 낱말로서 영어의 sympathy (sym=如+pathy=心)와 같은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공자사상의 핵심개념인 恕를 ‘다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4], 즉 ‘공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공자의 유교사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개념인 仁, 忠, 恕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억제하고 타자를 먼저 생각하는 이타성과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자성이란 측면에서 내러티브 정신과 일치한다. 이타성과 타자성은 자신의 이익과 관점을 억제해야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가치규범이며 도덕적 목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치규범과 도덕적 규범을 실천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높은 이상과 목표는 우리가 완벽하게 실천하고 도달해야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선한 사람이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가야할 선한 길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선한 사람은 언제나 그리고 완벽하게 선한 것이 아니라 선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타성과 타자성의 조건이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억제하고 타인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므로 내러티브 정신은 언제나 자신을 헌신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은 타인으로부터의 존중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라는 선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愛人者 人恒愛之)고 맹자가 말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힘들고 불가능해 보여도 내러티브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교는 동아시아인의 국가관을 형성한 철학이나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낡고 진부한 생활규범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논어”에 나타난 유교사상의 핵심가치가 의학교육의 최신 흐름인 의료인문학의 교육목표와 내러티브 의학의 기본정신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학교육학에서의 활용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논어”를 의료인문학의 한 교과목으로 강독하거나 의료인문학 교과목의 한 꼭지로서 유교의 핵심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강의하는 방식으로 “논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1. Charon R. What to do with stories: the sciences of narrative medicine. Can Fam Physician. 2007;53(8):1265–7.
2. DasGupta S. Between stillness and story: lessons of children's illness narratives. Pediatrics. 2007;119(6):e1384–91.
3. Jeong YO, Lucius-Hoene G, Bak YI. The ‘narrative spirit’: narratives for training doctors in Korea. In: Lucius-Hoene G, Holmberg CH, Meyer TH, editors. Illness narratives in practice: potentials and challenges of using narratives in health-related context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p. 138–48.
4. Luo Y. Textual research and analysis on Zhong-shu thought of Confucius Daegu: Institute of Humanities Studies; 2009.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