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17(2); 2015 > Article
인문사회의학 교육의 두 목표: 좋은 의사, 행복한 의사

Abstract

Recently,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has begun to take up an increased proportion of the Korean medical curriculum. Many people now agree that not only basic medicine and clinical medicine but also medical humanities is needed in medical education. The aims of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should dawn now. ‘Medical humanities’ can be roughly defined as “the interdisciplinary study and activity at the intersection of the humanities, social science, arts, and medicine.” People tend to assume that the aim of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is to produce good doctors, that is, physicians who contribute to society. Actually, cultivating good doctors is one of the proper aims of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In addition to it, another aim of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should be cultivating happy doctors. Nowadays, many of Korea’s physicians feel unhappy. In such a situation,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should be aimed at developing happiness in medical trainees.

서 론

최근 우리나라 의학교육에서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 인문사회의학교육이다. 2007년 현재 전국의 41개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모두에서 인문사회의학교육을 전공필수형태로 행하고 있으며 4개 학교는 전공선택교과도 함께 개설하고 있다. 개설된 학점 수는 한 학교당 평균 12.3학점으로 2000년도의 10.6학점과 비교할 때 16%의 증가를 보였다. 과목 개설시기도 2000년도에는 의예과에 집중되었던 데 비해 2007년도에는 전 학년에 걸쳐 고루 분포한다(An et al., 2008; Chen & Yang, 2003). 이런 변화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의 위상이 의학교육에 있어 예비적인 교육 이상의 비중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평가에 있어 인문사회의학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을 평가의 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Korean Institute of Medical Education and Evaluation, 2012). 이것 또한 인문사회의학이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과 더불어 의학교육의 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인정받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문사회의학교육의 이런 비중 확대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와 과정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공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Koo, 2010). 그 결과 인문사회의학의 교육내용 선정 및 조직, 교육내용의 폭과 깊이, 초점을 두는 부분이 그 목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운영방침이나 교과 담당 구성원의 배경, 교과 운영상의 제반 여건과 같은 임의적 요소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An et al., 2008). 이런 상황에서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이 그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힘들게 된다.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인문사회의학교육 시행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라고 볼 만한 것이 의료현장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문사회의학교육은 양적 확대에 치중한 측면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의의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교육이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정착된 지금은 본격적으로 내용의 충실화와 질적 향상에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인문사회의학교육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를 명료하게 밝혀서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이 교육목표에 입각해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교육을 행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은 그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려고 한다.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1): 좋은 의사 만들기

현재 우리 의학계에서는 ‘인문사회의학’의 뜻부터 합의가 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이 단어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예술의 여러분야와 의학간의 학제적 학문이나 활동’ 정도의 의미로 사용할 것을 제안해 본다. ‘인문사회의학’을 이런 뜻으로 볼 때, 그 교육목표에 대해서는 ‘현재 사람들이 목표로 간주하고 있는 것’과 ‘마땅히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후자이다. 그래야 앞으로 인문사회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전자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현재 생각은 일정 정도의 숙고와 검증을 거친 것이므로 옳은 것일 가능성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자를 잘 추구해 나가려면 전자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사람들이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로 간주하고 있는 것부터 살펴보자. 현재 사람들이 의학교육전체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좋은 의사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예를 들어 미국의과대학협의회의 보고서인 “21세기 의사상,” 영국 의학협회가 작성한 “미래의 의사,”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에서 제시한 교육목표들에서 강조하고 있는 의학교육의 방향이 ‘좋은 의사’ 양성으로 집약된다(Jeon et al., 2010)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때 무엇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한다. 즉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이득을 주면 좋은 사람이라 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손해를 끼치면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는 ‘의료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득을 주는 의사’를 ‘좋은 의사’라고 한다.
‘좋은 의사’가 이런 뜻으로 쓰인다는 것은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특징으로 꼽히는 것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Lee & Ahn (2007)에 따르면 의과대학생, 의과대학 교수, 환자, 개업의 등을 대상으로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을 선택하게 했을 때 가장 많이 꼽힌 10가지는 (1) 정확한 진단과 치료; (2) 최신의학지식과 기술의 지속적 습득과 적용; (3) 환자의 입장에서 아픔을 공감; (4) 평생 공부하고 자기개발; (5) 환자 진료 시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 (6) 환자에게 권위적이지 않고 친절함; (7) 환자 및 환자 가족과 신뢰관계 구축; (8) 임상문제 해결능력; (9)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봉사; (10) 적극적인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에 노력함이었다.
우리가 이런 자질을 모두 갖춘 의사를 상상해 보았을 때 그 의사는 환자와 사회에 큰 도움과 이득을 줄 것이라는 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점을 보아도 이런 자질을 갖춘 좋은 의사는 바로 ‘의료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이득을 주는 의사’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의학교육 전체의 목표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이런 의미의 좋은 의사 만들기이다. 그런데 인문사회의학교육은 기초의학교육 및 임상의학교육과 함께 이 의학교육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도 좋은 의사 만들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애초에 인문사회의학이 의학교육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인문사회의학교육은 기초의학교육과 임상의학교육으로만 이루어진 기존의 의학교육이 좋은 의사를 배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바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이상 보았듯이 현재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의사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따져보아야 할 것은 이 ‘좋은 의사 만들기’가 과연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바람직한 목표이기도 한지의 여부이다. 이점을 밝히려면 우리는 ‘교육의 궁극 목표는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는 의학교육 전체의 목표에 기여하는 것일 때 바람직할 수 있고 의학교육 전체의 목표는 교육의 궁극 목표에 기여하는 것일 때 바람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근본에 대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많은 교육철학적 논의들에 근거할 때 교육의 궁극 목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교육의 개인적 목적’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의 이익 증진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의 사회적 목적’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 증진이다(Noh & Hong, 2011). 즉 교육은 피교육자의 자기실현을 돕는 등의 방법으로 피교육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고, 피교육자를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키우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
현재 의학교육 전체의 목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좋은 의사 만들기’의 경우 교육의 이 두 궁극적 목표 중에서 ‘사회의 이익 증진’이라는 목표 달성에 잘 기여할 수 있다. 의사들이 실력과 윤리의식을 모두 갖춘 좋은 의사가 될 때 환자들이 더 잘 치료받고 더 인간적으로 대우받을 것이고 그러할 때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이득의 총량도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좋은 의사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지 않고 의학교육을 통해서만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좋은 의사 만들기’는 현재 의학교육의 목표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마땅히 그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학교육 전체의 목표가 되어야 할 이 ‘좋은 의사 만들기’가 마땅히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도 되어야 하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좋은 의사 만들기에 인문사회의학교육이 꼭 필요한가부터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좋은 의사 만들기라는 목표 달성에 기초의학교육과 임상의학교육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기본 자질로서의 첫 번째 요건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판단에 근거하여 정확한 시술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것(Koo, 2010)’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초의학교육과 임상의학교육만으로는 ‘좋은 의사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가령 우리나라 의사들은 뛰어난 의학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라는 책 제목이 있는 것처럼(Park, 2013) 많은 국민들은 병원과 의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의사의 권위적인 태도, 불충분한 설명, 환자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과잉진료가 자주 지적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까지 개선되어야 우리 의사들이 모든 면에서 좋은 의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개선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교육을 강화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사를 친절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고,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과잉진료를 자제하게 만드는 데 더 적합한 것은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교육이라기보다 인문사회의학교육인 것이다.
좋은 의사를 만드는 데 있어 인문사회의학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앞에서 본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것으로 조사된 자질들(Lee & Ahn, 2007)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자질들 중에서 (1), (2)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교육만을 통해서도 잘 갖추게 할 수 있다. 하지만 (3)–(10)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데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이 주도적이거나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인문사회의학교육은 좋은 의사 만들기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따라서 인문사회의학교육은 의학교육의 한 축으로 꼭 필요하며 그 교육목표는 ‘좋은 의사 만들기’가 되어야 한다.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2): 행복한 의사 만들기

앞 장에서 본대로 ‘좋은 의사 만들기’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과연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는 이것만으로 충분한가이다. 좋은 의사 만들기와는 달리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땅히 인문사회의학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 더 있을지 모른다.
과연 이런 목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교육의 궁극 목표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궁극 목표는 두 가지로 그 하나는 피교육자의 이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이익이었다. 교육은 피교육자만을 위한 것이어서도 안 되고 사회만을 위한 것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피교육자의 이익만을 증진시키려 할 때 자유 방종주의나 집단 이기주의형태의 교육이 될 것이며 피교육자는 간과하고 오직 사회의 이익만을 증진시키려 할 때 전체주의 교육이 될 것이다(Jung, 2009).
물론 교육이 언제나 피교육자의 이익 증진과 사회의 이익 증진에 같은 정도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중에서 더 잘 보호되고 증진되는 것이 달라지므로 그에 따라 교육의 목표로 강조해야 할 이익도 달라져야 한다. 가령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은 잘 추구하는데 사회적 역할은 소홀히 하는 경우라면 교육은 사회의 이익 증진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반면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은 잘 수행하는데 자기 행복은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피교육자의 행복을 더 강조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의사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어서 잘못하고 있거나 부족한 점이 분명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인문사회의학교육이 ‘좋은 의사 만들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이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자기 이익이나 행복 추구라는 점에서는 잘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 의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우리나라 의사들의 상당수는 자기 직업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불만의 목소리를 어디에서든 쉽게 들을 수 있다.
요즘 의사들의 모임마다 “이제는 정말 ‘의사 짓’도 못 해먹겠다······”는 장탄식을 쉽게 들을 수 있다(Cheong, 2004).
“의사들도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난단다. 정부는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환자들은 의사를 장사꾼으로 본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Park, 2013).”
많은 의사들이 의사직을 수행하면서 자부심과 행복보다는 분노나 억울함, 불안감 등을 더 느낀다는 것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통계조사들을 보면 의사의 직업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미래의 직업세계 2007”이란 책자에 따르면 의사는 조사직업 170개 중 모델에 이어 직업만족도가 두 번째로 낮은 직업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이런 만족도는 다른 나라 의사들에 비해서도 뚝 떨어진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특별포럼에서 소개된 바에 따르면 의술을 행하는 의사로서의 경험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세계 평균이 7.06, 아시아 평균이 7.25인데 비해 한국 의사는 5.60으로 크게 떨어져 최하위권에 해당했다(Doctorstimes, 2008)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조사에서는 의사 10명 중에 대략 4명(43.8%)만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답해 비슷한 조사에서 일반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행복하다고 응답한 것에 크게 못 미쳤다(Doctor’s News, 2010). 2011년 의료정책연구소 조사에서도 ‘내 직업에 만족한다’는 개원의는 34.1%에 불과했다.
이런 조사에서 확인되듯이 우리나라 의사들이 느끼는 불만족이나 불행감의 정도는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낮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학교육에서는 이들이 자기 이익과 행복을 잘 증진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데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바로 이점만으로 의학교육의 한 축인 인문사회의학교육이 ‘좋은 의사 만들기’ 외에 ‘행복한 의사 만들기’라는 또 다른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행복한 의사 만들기가 그 자체로 보면 아무리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라 해도 그렇게 만드는 데 있어 실제로 인문사회의학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문사회의학교육이 행복한 의사 만들기를 목표로 했을 때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의사들의 낮은 직업만족도의 원인을 찾아낸 다음 그 원인을 인문사회의학교육이 해소시킬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오늘날 우리 의사들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 낮은 의료수가 등의 의료정책으로 인한 평균적인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 및 의사 간 경쟁과 분화 심화

  • (2) 국가의 통제 및 병원의 경영논리 강화로 인한 임상적 자율권의 축소 및 왜곡

  • (3) 사회나 환자의 존경심 감소 및 비판적 시각 증가

이 원인들 중에는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대처해도 변화시키기 힘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의료비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간섭, 병원의 경영 논리에 근거한 간섭 등으로 의사의 자율적 영역이 축소되는 현상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원인들 중에는 의사들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것도 있다. 가령 의사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의 낮은 의료수가나 잘못된 의료정책은 의사들이 그 부당함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알리고 설득시키는데 성공하다면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공정하고 타당하면서 의사의 이익도 잘 보호할 수 있는 의료제도나 정책을 개발하여 이것을 사회에 제시한다면 의사에게 좀 더 유리한 외부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의사들이 이런 대응을 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의료상황과 제도, 정책 등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의 이익과 사회적 공정성을 함께 고려하여 타당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이 대안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설득시키는 소통방법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능력과 앎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만으로는 획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이루어진 업적을 가져와 의료영역에 잘 적용시킬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인문사회의학의 연구 및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의사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데 대해 99%가 ‘그렇다’라고 답했다(Doctorstimes, 2008).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이런 의사들의 목소리가 좀 더 설득력 있고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인문사회의학의 연구와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 불만족의 원인이 되었던 것들에 대해 의사가 그것을 제거하기는 힘들지만 그로부터 더는 분노나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길도 있다. 가령 의사의 현재 수입과 자율성의 정도를 과거 의사의 경우하고만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신, 그런 변화의 불가피한 측면에 주목하거나 오늘날 다른 직업들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는 등의 방식으로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오늘날의 의사직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런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통계도 있다. 앞에서 본대로 의사의 직업 만족도는 많은 조사에서 매우 낮게 나타났고 심지어 170개 직업들 중 뒤에서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2년에 발표한 우리나라 759개 직업 종사자의 직업 만족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의사는 만족도가 44위로 여러 직업들 중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KoreaMedicare, 2012). 그리고 같은 기관에서 2013년에 발표한 자료는 의사를 각 전공분야로 나누어 조사했는데 예를 들어 방사선과 의사는 만족도가 16위, 성형외과 의사는 20위 등으로 역시 의사들의 직업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이 기관에서의 조사들에서 의사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을까?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 만족도 조사는 각 직업종사자에게 직업의 ‘사회적 기여도, 지속성, 발전 가능성, 업무환경과 시간적 여유, 직무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KoreaMedicare, 2012). 즉 다른 조사들과 비교할 때 이 조사는 자기 직업의 여러 측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해보게 한 다음 만족도를 평가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조사하자 의사의 직업 만족도 순위가 급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의사가 처한 외적 상황이 같다고 해도 그 상황을 좀 더 총체적으로 보는 등의 관점 변화로 자기 직업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 의사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 전환 역시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 교육으로 해내기는 힘들다. 대신 세상을 전체적이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인문학적 통찰을 위시하여 사회과학적 지식, 예술적 감성 등이 의학에 도입될 때 훨씬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의사들이 관점변화 등의 방법으로 자기 행복을 더 잘 추구할 수 있게 하는데도 인문사회의학교육이 필요하다.
외적 상황이 변함없더라도 의사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가치를 모색함으로써 직업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다. 의사직은 그 직업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 직업이다. 따라서 예전에 추구하던 가치가 이제 손쉽게 획득하기 힘든 것이 되었을 때 다른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예전의 가치에만 계속 집착하게 되면 의사는 자기 직업에서 만족을 느끼기 힘들게 된다.
“관심사가 경제적 안정, 사회적 존경, 연장된 노후 기간에까지 전문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정도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의사로서의 그들의 삶은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타 직종에 비하여 경제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뜻밖에 3D 업종의 일을 하는 사람처럼 될 수도 있다(Jeon et al., 2010).”
이와 달리 의사직을 통해 획득 가능한 다른 다양한 가치에 눈을 돌리면 의사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가치 충족에서 느끼는 깊은 만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가령 의사는 더 이상 예전처럼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평생 동안 지속되는 배움, 환자와 사회에 큰 도움이 됨, 사회 모든 집단의 사람들과의 만남 등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TV 드라마 등에서 여러 직업 중에서도 의사를 자주 다루는 것은 그만큼 의사의 삶이 흥미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사 중에서 의과대학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은 진료, 교육, 연구를 모두 행하는 격무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치에 눈을 돌리면 격무 때문에 힘들어 하고 피곤해 하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의과대학 교수의 격무를 뒤집어보면 고통을 겪는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보람과,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영재인 의과대학생과 전공의 등 후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재미와, 학계와 사회에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와, 평생에 걸쳐 학문과 사회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고 성숙시킬 수 있다는 가치를 뜻하기도 한다(Kwon, 2011).”
물론 다른 의사들은 의과대학 교수와 놓인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의사도 자기가 놓인 상황에서 추구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의사직을 통해 추구 가능한 여러 종류의 가치들을 쉽게 발견하고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나 명예 같은 가치는 누구나 쉽게 가치임을 느낄 수 있으나 가령 평생 동안의 배움을 가치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상당한 가치 탐구와 훈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탐구와 훈련을 잘 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 교육이 아닌 인문사회의학교육이다.
이상에서 본대로 인문사회의학교육은 의사들이 자기 직업에서 더 큰 가치와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의사들이 의사직에 대해 상당한 불만족을 느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인문사회의학교육은 꼭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인문사회의학교육은 당연히 ‘행복한 의사 만들기’를 그 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결 론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인문사회의학교육이 좋은 의사 만들기와 행복한 의사 만들기 모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좋은 의사 만들기 교육과 행복한 의사 만들기 교육은 일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것은 좋은 의사가 행복한 의사인 경우가 많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의사이지만 행복하지는 않는 경우도 분명 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 행복한 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분명 있다. 따라서 좋은 의사 만들기와 행복한 의사 만들기 모두를 목표로 할 때의 인문사회의학교육은 좋은 의사 만들기만을 목표로 삼을 때의 교육과 일정 정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문사회의학교육이 이 두 목표를 모두 성취하려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앞으로 남은 과제이다. 예상컨대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의사’와 ‘행복한 의사’의 구성 요소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좋은 의사’와 ‘행복한 의사’로 떠올리는 모습은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의사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교육은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이 교육이 ‘행복한 의사 만들기’라는 목표도 성취할 수 있도록 보완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 기존 의사나 의과대학생 및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은 대개 자기 이익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좋은 의사 만들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자기 행복을 잘 찾아나가도록 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좋은 의사가 되게 만드는 데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많은 의사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좋은 의사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마치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는 요구처럼 여겨져 반감을 갖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행복한 의사는 더 기꺼이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한다. 따라서 좋은 의사를 만들려는 교육목표를 잘 달성하기 위해서도 인문사회의학은 행복한 의사 만들기라는 또 다른 목표를 분명히 자각하고 지향해 나갈 필요가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NRF-2014S1A5B8063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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