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전문적 지식을 의료 현장에서 제공하는 첨단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이 말이 21 세기의 의료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 의료인들에게도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의료서비스 방식과 다른 무언가가 요구된다. 시대의 변화는 병원 뿐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이미 감지되어 오고 있다.
최근 의료계는 높은 개원 비용에 비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수익 감소로 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높아지고 폐업 소식조차 심심찮게 들려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의료기관 운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기존의 공동개원 방식이나 단순한 브랜드 공유네트워크 방식의 병원에서 더 나아가,의사와 환자 또는 고객 간의 지적 정보와 정서적 경험의 교류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경우,요즘은 소비자에게 자사 제품의 기능 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스토리텔링과 같은 감성을 끼워 홍보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상품의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만 보더라도, 구매자들은 제품 개발자인 스티브 잡스의 인간승리 스토리에 열광하고 감동한다. 반대로 삼성전자의 고만고만한 유사상품에 대해서는 철학이 없다고 외면하기도 한다.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사람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가치’ 또는 ‘감정’에 따라 결정히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이볼 수 있다. 강의로 주입하는 교사,노트에 필기하는 학생은 더 이상 경쟁적이지 못하다. 이제 학생들은 유명한 인터넷 강사의 짜릿한 강의를 수준별로 찾아 반복 학습할 수 있고,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을통해 최첨단의 지식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동향은 병원의 의료서비스도 더욱 고객의 감성과 연결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 대한민국의 의료인들이 더 효율적이고 유능하게 기능하는 쪽으로 변해야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인의 역할은 전문적 지식, 실제적 기술,그리고 인간적 자질이란 세 가지 핵심적인 요소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의료전문가의 인간적 자질,즉 사람됨이에 특히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즉 어떠한 인간적 자질이 의료서비스 현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고객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자질에는 어떤 특성들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둥을 조명해 볼 필요가있다.
Loughaiy(1965)는 일을 천직(vocation)과 직업(job)으로 구분하였다. 직업은 우리가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일하는 것이고,천직은 일을 통하여 삶의 목적,성취,공헌 등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의료전문가는 마땅히 천직의 성격을 띠어야하고,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어떠한 일이라도 그것올 통하여 삶의 의미와 보람을 경험할 때,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그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보람되게 임할 때, 그것이 바로 천직이고 전문직이 되는 것이다.
의료전문가는 자신의 직무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 그 업무의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똑같은 의료 활동을 수행하더라도 그것을 생계유지나 다른 이기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여길 수 있고, 사명감과 봉사정신에 입각하여 보람되게 그 일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외견상 비슷한 일올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 일이 한 사람에게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의 방편이 되고,다른 이에게는 보람을 경험하도록 하는 천직 또는 생업이 될 수 있다. 의료전문가가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삶의 의미나 보람을 얻으려면, 그 일의 수단적 가치보다 내재적 가치 또는 목적적 가치에 치중 해야할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전문가가 지녀야 할 인간적 자질은 무엇인가? 상담심리학에서 집단지도성을 주로 연구한 Dinkmeyer & Muro(1979)는 신뢰성을 발달시키는 능력,경청 기술,집단과 개인에게 공동목표를 발달시키는능력,자발적이고 직관적인 반응력,안정되고 확고한 자세,유머,관심과 돌봄의 태도라는 일곱 가지를 유능한 지도자의 인간적 특성으로 제안하였고, Kottler(1983)는 자신감, 유머,모험 감행 능력,정직성,왕성한 열정, 동정과 자비심을 제안하였다. George & Dustin(1988)은 자각 능력,진실성, 온화하고온정적인 관계 형성 능력,민감성과 이해심,자신감,유머, 융통성,자기평가의 의지력을,그리고 Corey(2000)는 정서적으로 함께 하는 능력, 개인적 능력, 용기, 자신에게 맞닥뜨리는 의지력, 성실성,정체감, 신념과 열정,창의력을 유능한 집단상담자의 인간적 특성으로 지적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견해들은 언뜻 보기에는 복잡해서 일관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고,의료전문가가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가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병원이라는 작은 조직체의 리더로서 또는 의사-환자라는 특수한 인간관계의 측면을 고려할 때 지녀야 할 여러 가지 인간적 특성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들을 바탕으로 하여 여기서는 의료전문가가 지녀야 할 인간적 자질들을 열거하고,21 세기 의료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지" 한다.
첫째, 환자 또는 동료 의료인에 대한 선의와 관심이다. 환자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진심으로 관심 갖는 것이 효과적인 의료전문가의 필수적 자질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조직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과 동료 간에, 그리고 동료들 상호간에 존중이나 선호 도에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의료전문가는 이기적인 목적 달성이나 자신만의 성장 발달을 위해 역할을 남용하거나 조직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유능한 의료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며,있는 그대로 가치톱게 인정하면서 관심을 보여주는 태도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용기와 끈기이다. 효과적인 의술은 실수나 실패의 가능성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행동을 모험적으로 시도해보는 용기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다. 의료전문가는 때때로 옳은지 그른지 불확실한 과업 앞에서 자신의 신념이나육감에 의존하여 과감히 시도할 수 있다. 유능한 의사는 실수했을 때나 자신의 지각이나 육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그것을 감추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지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 봄으로써,있는 그대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타인 앞에 솔직하게 노출하는 용기도 지녀야 한다. 효과적인 의료전문가는 일시적으로 동료나 환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느끼도록 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바람직하지 못한 행동패턴에 대하여 솔직하게 피드백하고 직면할 수 있으며,그들의 오해나 원망까지도 여유 있게 다룰 수 있는 태도와 용기도 길러야 한다.
셋째, 유능한 의료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을 대해야 한다. 병원은 이론과 실제가 모두 필요한 전문분야다. 유능한 의사란 그가 익힌 지식과 기술을 의료 현장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사의 역할은 주로 획일적인 진료 행위에만 강조점을 두어왔기 때문에, 동료 의료인들과의 교류와 팀워크 형성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감이란 병원 안에서 동료 의료인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도와서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가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만스럽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감이 없는 의사는 동료의 부정적인 태도에 쉽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감을 지니고 있으면 타인의 공격이나 비난에 동요되거나 위축되지 않고 행동한다. 자신감이 없는 의사는 병원 조직의 역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거나 일관성 없는 지시를 하기 쉽고,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즉각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렵다. 자신감에 차 있을 때, 그는 허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어 초조하게 서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동료들에게 의존을 강요하지 않으므로 병원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다.
넷째, 의료전문가는 융통성과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융통성과 포용력이 없으면 병원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렇게 되면 동료 의료인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수동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마침내 조직의 역동이 갈등상태에 빠지게 되고, 개개 조직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융통성과 포용력이 부족한 의사는 가치판단에 사로 잡혀 타인의 특정 행동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허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는 타인의 행동을 공감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고,조급하게 그의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렇게 되면 동료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하게 갈등하고 수동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역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의료전문가는 자신이 계획한대로 따라오도록 강요만 하기보다,동료나 환자들로 하여금 마음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따라오도록 허용하는 융통성과 포용력을 가져야한다.
다섯째,진실성과 개방성이다. 진실한 사람이라야 믿을 수 있고 개방적인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진실성과 개방성은 의사가 환자나 동료 의료인들을 대할 때 마음속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와 일치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진실한 의사는 가면을 쓰고 있는 체하거나 겉모습 뒤에 자신을 숨기는 가장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효과적인 의사는 단순히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만 수행하거나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개방할 수 있다. 솔직한 자기개방은 타인의 솔직한 개방을 촉진시킨다. 자신의 권위나 체 면에 얽매이지 않고 느낌이나 생각과 같은 내적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인정하고 개방하면, 동료들도 상호간에 그리고 병원이라는 조직에 대해 쉽사리 신뢰하게 된다.
여섯째,자각과 수용의 능력이다. 의료전문가는 환자나 동료 의료인들을 이해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알고 수용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이며,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에 관하여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자신의 정체, 목표,동기, 욕구,장점과 단점, 가치관 등에 대하여 명확히 알 뿐 아니라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일곱째,민감한 지각력이다. 병원에 소속된 다양한 구성원들은 상호복합적인 언어 또는 비언어 메시지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낸다. 유능한 의사는 이러한 메시지에 민감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민감한 지각력이 있는 의사는 병원 조직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역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동료나 환자들의 욕구나 느낌,갈등 등에 대해서도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시는 타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지각한 다음,이에 대하여 공감적인 반응을 해줌으로써 그들이 이를 깨닫고 수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여덟째,창의적 능력의 활용이다. 유능한 의사는 참신하고 새로운 정신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창의적인 의료전문가는 옛날 방식을 되풀이하기만 하기보다 새로운 방법과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경력이 많을수록 판에 박힌 행동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참신한 모습과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업무에 임 함으로써,신선미를 유지하고 구태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고 개선해나가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결국 유능한 의료전문가란 주어진 여건이나 기존의 접근과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독창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개발해서 적용하는 사람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전문가(change agent)이다. 기존의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창의성을 기 대하기란 어렵다.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자만이 창의성을 발휘 하고 진보할 수있다.
아홉째,유머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고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조차 유머로 받아넘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때, 의사가 유머로써 불안을 낮추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돕는다면 그는 인술(仁術)을 활용하는 셈이다. 또한 유머는 병원 조직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며, 구성원의 느낌,생각,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강 력한 개입수단이다. 병원은 긴장이 고조된 조직이므로,그 긴장 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가끔 웃음과 유머를 필요로 한다. 장시간 심각하고 힘든 과업을 수행한 후에 유머를 통하여 심신의 이완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머는 만성적 우을,불안,스트레스, 심장질환 둥과 같은 생리?심리적 문제를 낮추는 데도 긍정적인 관계가 있다(Sultanoff, 1998). 유머는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는데 사용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다.
결국 유능한 의료전문가는 위의 홉 가지 인간적 자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자질은 바로 지혜일 것이다. 즉 유능한 의사는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들은 21 세기 의료전문가가 갈 길에 대한 대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