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11(2); 2009 > Article
의학교육에서의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의미

Abstract

Teaching and learning were carried out long before the word “education” was coined. As teaching and learning became more universal, the word “education” was construed as a social promise, and there was a general consensus as to what it denoted. Many university professors will most likely have great confidence and expertise with respect to “teaching” in their area of specialization, and they believe that they are fulfilling a social promise. However, how much expertise do they have in actually making students “learn”? How concerned are professors about enabling students to utilize their potential and talents to cultivate their learning abilities and to adjust to the different demands of various fields? The same issue arises in medical education. To what extent can professors’ teaching heighten students’ sense of purpose and motivation to learn? With regard to increasing learners’ initiatives, the learning model of constructivism presupposes that learners are active and creative, have their own personalities, and possess unlimited learning potential. The PBL being carried out in medical schools today is a form of study that can take advantage of these aspects of learners. They can maximally widen the range of students’ development through many intellectual activities and solve difficult problems by either sharing or critiquing the thoughts and ideas of others. The acts of teaching and learning that have been carried out for thousands of years remain difficult to this day and must be ceaselessly deliberated and researched by experts in the field of education. Just as good teachers are required to produce good learners, we must give ourselves room to rethink the basis of education in order to maximize effective and efficient learning.

서 론

교육이라는 말이 있기 이전부터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있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됨에 따라 하나의 사회적 약속으로‘교육’이라는 말이 형성되었고, 이에 대한 의미와 합의를 이루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말은 동양의 고전인 맹자의「진심장상(盡心章上)」에서 처음 나타난다. 즉, 군자에게 세 가지 참된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얻어서 그를 교육하는 것이 그 중의 한가지라고 하였다. 한자어로 교육에 해당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가르치고, 기르다이다. 즉, 우리말‘가르치다’의 의미는 시비선악을 골라 판단하여 나쁘고 거친 것을 다듬어 착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르다’는‘길다’에서 나온 말로 성장시키고, 자라나게 하며, 크게 하는 것으로 어떠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일정한 목표와 방향으로 이끄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교육을 뜻하는 말로 2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education’은 라틴어 e(out)와 ducare(lead)의 합성어로 학습자가 갖고 있는 선천적인 소질 또는 잠재능력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바람직한 방향으로 신장 발전시킨다는 뜻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pedagogy’가 있 는데 라틴어 paidos(어린이)와 agogos(이끌다)가 결합되어 어린이와 함께 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윤정일 외, 2008).
이와 같이 교육의 어원을 생각해 볼 때‘teaching is learning’ 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교수자가 가르친다는 것 은 결국 학습자가 얼마나 잘 배울 수 있는가에 그 중요성이 있다. 오늘날 모든 학문분야에서 바로 이러한‘learning’이 없는 ‘teaching’이 존재할 수 없고 의미 또한 없다는 것이다.
많은 대학에서의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을‘teaching’하는 것에는 상당한 자신감과 know-how를 갖고 있을 것이며 그렇다고 자신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learning’할 수 있도록 하는 know-how를 과연 얼마나 갖고 있을까?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잠 재력과 능력을 발휘해서 학습능력을 함양시키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수들이 얼마나 고민하였는가?
사실 각자의 경험상‘잘 가르치면 정말로 잘 배웠는가?’혹은 ‘많이 가르치면 진짜로 많이 배웠는가?’라고 한 번쯤 되짚어 보 면 항상‘그렇다’고 답하기에는 어딘지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학습자의 입장에서 교수자의 가르 침을 온전히 배웠는지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교수자의 입장에서 전한 가르침들이 온전히 잘 전달되었는가를 성찰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보다 원론적으로 가르치는 존재 혹은 배우는 존재 각자의 의식 속에‘가르침과 배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그 무엇이 자리 매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본 원적 질문이 필요하다.
이 글은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것의 본원적 의미를 생각해 보 고자 하였으며, 그 의미가 의학교육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자리 매김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의학교육 에서의 교수-학습이라는 패러다임이 본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전환되어야 하며,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교수자는 학습자들에게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배움의 틀을 갖추도록 가르침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

의학교육에서 교수-학습의 패러다임 전환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숨을 쉬고 있지만, 인간마다 숨쉬는 시간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즉, 모두가 동일한 시간차를 두고 들숨과 날숨을 쉬는 것은 아니다. 여럿이 어울려 기대한 결과를 얻었을 때‘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각자가 서로 숨을 맞추는 일은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숨쉬기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그 시간과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김성길 외 2004).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배움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본성이지만, 그 본성이 드러나는 시간과 방법 에는 서로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배움의 본성을 회복해 내는데도 개인마다 시간과 방법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으로서의 배움이 추구하는 바는 평생 배움의 주체로서 개인이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다(한준상, 2001). 그동안 교육학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것의 의미를 규정해 왔다. 그 결과 지금껏 배움은 하나의 결과물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이 때문에 배움의 세계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은폐되어 있다. 여기서 가르치는 교수자는 기존 질서의 대변인이다. 상대적으로 배우는 학습자는 주체적인 지위를 갖지 못한다. 가르침을 강요하는 질문은 배움의 본질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은폐하고 배우는 학습자를 소외시킨다. 소외된 배우는 학습자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한다.
Parker Palmer는“훌륭한 가르침은 테크닉이 아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자아와 세계의 가장 진실된 곳에서 우러나온다. 그 용기는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 속에 있는 진실 된 곳을 발견하고 탐험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하였다(이종인 역, 2001). 교육이 궁극적 으로 추구하는 것이 배우는 이의 태도와 기술과 지식의 변화라면, 그 변화의 촉매자로서 가르치는 교수자 스스로가 삶의 중심을 바로잡고 매 순간‘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바르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교수 활동과 그 결과로서 의 학습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교수-학습과 그 원천인 배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실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분리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교 수자인 동시에 학습자이고 학습자인 동시에 교수자라는 인식의 확산이 우선되어야 한다(양은배 외 2008).
현대 사회에서 교수자의 역할 또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지 식의 전달자, 훈육자, 학습의 통제자 등의 역할에서 교육적인 산파역, 방법론적 전문가, 학문의 촉진자, 자원의 제공자 등의 역할이 점차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교수자는 학습의 내용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경험의 과정에서 학생의 학습 수준에 따라 안내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학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환경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의학교육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의학교육의 변화 추세 그리고 국제 표준화의 흐름은 의학교육에서의 새로운 교육과정, 교수-학습방법과 평가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임상수기능력과 태도 등의 학습과정(process)을 평가할 수 있는 OSCE, CPX와 같은 수행평가방법이 있으며, 현장실습 교육과정인 서브인턴쉽과정의 운영, 인문사회의학적인 태도를 배양할 수 있는 교육과정개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이무상, 2008).

의학교육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으로서의 배움

대학교수들이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어 느 학문문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라고 본다. 물론 의학교육에서도 같은 고민이 있다고 본다. 과연 교수가 가르치는 행위가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고자 하는 목적의식과 동기유발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인가?
배움은 기본적으로 대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배움을 단성 적(單聲的) 대화가 아니라 다성적(多聲的) 대화로 파악하는 것은 대화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언어교통(言語交通)으로서의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소통으로서의 대화다. 언어교통은 단성적인 대화를, 그리고 의식소통은 다성적인 대화를 의미한다. 삶의 발달단계상 어릴 때의 배움 과정에서 단성적인 언어교통의 대화요소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은 그 본질에서 다성적 이다. 또한 의식소통은 대화하는 사람들 간에 공명(共鳴)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의식소통은 대화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 다름을 드러내는 과정인 동시에 화합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기 도 하다(김성길, 2009). 이와 같이 배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소통을 전제로 하기에 그 속성상 대화적이다. 대화적이라는 말은 타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텍스트를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배운다는 것은 배움 본성을 타고난 인간의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서 부터 시작한다. 즉, 이러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교수자 와 학습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의 터득하고 마련해 가는 것이다. 그러한 장(場)을 마련하는 것은 역시 교수자의 책임일 것이다.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도 역시 이러한 장(場) 을 의사가 만들어야 하므로 의학교육에서 실행되어져야 하는 중요한 교육과정이 된다.
의학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교수법 중 의 하나는 다른 전공과 마찬가지로 대형강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강의형태라는 입장에서는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 제 강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은 다소 다르게 보여진다. 가르친다는 것에서야 특별히 차이가 있지는 않지만 의학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양은 다른 전공과는 사뭇 그 분량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많은 양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소통의 장이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고충이 존재한다.
배운다는 것, 즉 학습이란 교수자나 교과서(비디오, 시범, 실 험)등의 정보가 학생들의 머릿속으로 전달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존정보를 나름대로 새로운 정보와 결합시켜 지식을 구성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습자들은 학습상황에서 나름의 자기방식으로 지식을 구성해 나간다. 결국 수업 상황에서는 학습자들이 자기조정적 학습활동을 통하여 지식을 구성해 나가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 서는 교수자의 주도성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주도성도 높아야 한 다(조벽, 2004).
학습자의 주도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구성주의적 수업모형은 학습자가 능동적이고 창의적이며, 개성을 갖고 있고 무한한 발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된다. 학습자는 교수자가 제시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경험에 비추어 인지·분석·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다시 재구성하고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학습자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 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독창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현재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PBL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잘 살릴 수 있는 수업의 한 형태이다. 학습자는 여러 지적인 활동을 통해 그들이 발전할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힐 수 있으며, PBL 수업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이나 아이디 어를 공유하거나 비판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다. 구성 주의 입장에서 보면 수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교수자가 제시할 내용과 학습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선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이미 형성된 개념체계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므로 선개념이 학습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습자의 주도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또 하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교수법에서 John Dewey의 진보적인 교육 체제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교육체제로의 변화는 자연과학 등에 있어서 실험실습교육을 강화시켰다(한승희, 2006). 현재 의과대학에서 시행되어지고 있는 임상실습은 이러한‘active learning’의 한 형태이다. 실험과 실습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학생들이 얼마나 학습 활동을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습이란 학교교육에서 특 정의 기능을 습득하기 위해 직접적인 경험활동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실습을 지도할 때에는 실제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을 학습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교육적으로 재조직해야 한다. 즉 실제적인 장면에서 체계적인 실습이 이루어지게 되면 더욱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천과학과 관련된 교과에서 는 효율적인 행동변화를 위해 실습교육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실습은 학습되는 사실이나 원리와 관련된 활동을 실제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학습자의 동기를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학습자의 창의성이나 표현능 력을 자극시켜, 추상적인 개념만을 학습하기보다는 실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교수학습지도과정에서는 실험과 실습 등 적절한 체험을 통한 학습활동이 충분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공양희 역, 2007).
의학이 종합학문으로서 모든 학문분야를 포괄하고 응용하듯 이 의학교육도 일반 교육학의 원론적 분류에 속하는 모든 분야를 포괄하면서 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주지의 사실 이다. 즉, 의학교육은 의사라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특별한 목적 이 있으면서도 그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능력, 태도 등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 론

수 천년동안 행해져 왔던 가르치는 행위와 배우는 행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교육현장에 있는 우리 구성원들에게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과업이다. 바람직한 학습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좋은 교수자가 있어야 하듯이 효과적이 고 효율적인 학습의 극대화를 위해 교육의 근원을 다시 한번 생 각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는 교수자의 가르치는 행위와 학습자의 배우는 행위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인정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 지만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수자와 학습자, 교과내용이라는 교육의 3요소가 상호작용하기보다는 교수자에게서 학습자 에게로 교과내용이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의학교육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교수와 학습에 대한 개념 정립의 오류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교수와 학습을 별개의 독립적인 활동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교수-학습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교수활동이라는 독립변수, 원인변수의 작용 에 따른 종속변수, 결과변수로 학습활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배운 이와 앞으로 배울 이들 간의 상호 작용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교수자와 학습자는 상하의 수직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성숙자가 미성숙자에게 일방적 으로 전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많이 아는 교수자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덜 아는 학습자의 종속관계가 성립할 뿐이다. 이러한 종속적인 관계에서는 권력의 강압과 착취가 있을 뿐, 교 육이 추구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고요한, 2007).
많은 사람들은‘의학교육은 다른 전공의 교육과는 다르다고 아니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교과목 내용 교육 환경, 진로 등일 것이다. 결코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의학교육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양질의 전문 의료인력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 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현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동안의 의학교육은 인 간의 생물학적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의 다른 문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의학교육과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의학교육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의사 를 양성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의학교육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의학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학생들에게 현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인 사고, 지식을 조직 및 통합하는 능력,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 등을 배양시키고 의사로서 지녀야 할 태도 및 술기 능력을 형성시켜 줄 수 있는 적절한 교수-학습환경이 제공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교수자의 교수능력이 제공되어야하며, 그 모든 것이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의 본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가르치는 보람과 배우는 즐거움은 마치‘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에‘둘 다 좋아!’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선택처럼, 결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과감히 배우는 즐거움을 선택하고 싶다. 교육하는 교수에게 가르치는 보람은 중요하다. 이러한 보람은 의학교육이라고해서 예외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본연의 임무 중 교육의 의무가 있다는 것 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들에게는 다른 전공에서의 교수들에게 부과되지 않는 의무인 진료가 있다. 환자 진료는 결국 미래 의학의 발전을 위해 현재의 학생들에게 교육이 라는 행위로서 투자를 하는 것이다. 교수자의 가르침을 통해 학습자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한 변화의 주인공이 가르치는 자신이 되면 안 될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이는 더욱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할 필요가 있다. 공자도“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만 못하다”라고 했다. 무엇인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요리해 낼 수 있는 사람, 만나면 왠지 행복해지는 사람, 가르치는데 집착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배우 는 즐거움에 몰입하는 사람이 진정한 가르침의 선구자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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