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저: Thomas Neville Bonner. Becoming a physician: medical education in Great Britain, France,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1750-1945.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424 p.
저서: 의사 만들기
저자: 토마스 네빌 보너(Thomas Neville Bonner)
역자: 권복규, 최은경, 윤현배, 정한나
출판사: 청년의사
출판연도: 2024년
쪽수: 660쪽
“의사 만들기”는 1750년부터 1945년까지 약 200년에 걸친 의학교육의 역사를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네 나라를 중심으로 촘촘히 따라간다. 근대 서양의학의 토대를 다졌던 이 시기의 의학교육을 이렇게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은 드물다. 교육학자이자 저자인 토마스 네빌 보너는 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학교육의 제도, 커리큘럼, 학생 구성, 교수법, 병원과 대학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고 충돌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의사’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교육의 조건들’을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클리닉’이란 말이 지닌 다층적 의미, 독일에서 교육수준에 따라 의사 직역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그리고 실험실 교육이 확산되면서 임상교육과 벌인 팽팽한 긴장 등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교육적 질문들을 던진다. ‘학생이 병상에서 직접 본 것과 기계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는 강의 중 어느 쪽이 진정한 학습인가?’ ‘의료는 과학인가, 기예인가?’ ‘교육은 관찰을 가르쳐야 하는가, 결론을 주입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적게 읽고, 많이 보고, 많이 하라”는 교육 모토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에도 반복되는 “현장 실습의 부족”이라는 학생들의 불만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실제로 200년 전 프랑스의 교육자들도 “150명을 병상에 데려갈 수는 없다”며 환자와 학생 모두가 지쳐 있음을 토로했다. 의학교육의 현실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또한 여성, 비주류 인종, 저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겪은 배제와 차별도 곳곳에서 언급된다. “너는 약한 여성이 아니냐”는 한 아버지의 탄식 속에는 그 시대 의학교육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왜 지속적으로 다양성과 형평성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은 방대한 정보량과 각국의 제도 차이에 대한 반복적 설명으로 다소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번역이 매끄럽고 충실하여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또한 ‘intern,’ ‘clerkship’ 같은 현재의 용어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의사 만들기”는 단순한 의학교육의 과거사가 아니다. 의사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의사를 길러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현대 의학의 교육자와 학생 모두에게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역자인 권복규, 최은경, 윤현배, 정한나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전하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