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생 임상실습병원의 현황
의과대학 수가 많지 않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의과대학은 학교법인에 소속되어 있는 소위 대학부속병원을 운영하면서 의과대학생들의 임상실습교육의 거의 대부부분을 이 대학부속병원이 담당해왔다. 그러던 중 1978년부터 시행된 서울대병원설치법과 1991년에 시행된 국립대학병원설치법에 따라 10개 국립 의과대학들이 특수법인화되었고, 같은 법에 따라 의과대학 교수들이 관련 대학병원의 직무를 겸할 수 있도록 겸직이 허용되면서 국립 의과대학과 사립 의과대학의 부속병원 형태가 이원화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기존 사립 의과대학이나 신설 의과대학 중 일부가 복수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한 병원만 학교법인인 대학부속병원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병원들은 의료법인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편법 운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학교법인인 대학부속병원은 교육용 재산이라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은 반면 의료법인은 수익재산이라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 소유의 사립의과대학 중 일부가 이러한 운영방식을 취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뚜렷한 법률 혹은 규정상의 근거 없이 의료법인병원들도 대학병원으로 지칭하고 소속 의사들을 의과대학 전임교수로 임용하여 왔다.
2014년을 기준으로 삼을 때 31개 사립 의과대학 중 23개 의과대학은 소유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병원이 모두 학교법인 대학부속병원인 반면, 5개 의과대학(가천, 성균관, 을지, 차, 한림)은 하나의 대학부속병원과 복수의 의료법인 협력병원의 형태로 운영 중이다. 특히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등 3개 사립 의과대학은 아예 부속병원 없이 협력병원만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 중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은 2014년 6월 30일 관동대학교 전체가 명지학원으로부터 인천가톨릭학원으로 인수되었고, 새로 개원한 국제성모병원이 학교법인 관동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교육부 승인을 받음으로써 정상화되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은 울산에 소재한 울산대학교병원이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소속이긴 하지만 교육용 재산이 아닌 수익용 재산으로 등록되어 교육부로부터 부속병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복지법인인 서울아산병원이 실질적인 학생 교육병원의 기능을 하고 있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부속병원이던 광주 소재 남광병원이 보건복지부 감사결과 수련병원 자격이 취소되면서 교육부로부터도 학생 임상실습병원의 자격을 잃게 되었고 그 후 현재까지 부속병원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결국 서남대학교 재단과 아무 연관이 없던 전주예수병원과 협력병원 협약을 체결하여 학생 임상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학생 임상실습병원은 학교법인 대학부속병원 단일 체제에서 학교법인, 특수법인,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등 다양한 법인격을 가진 병원으로 복잡해지고 있고,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와 같이 학교와 무관한 병원이라도 협약을 통해 임상실습을 담당하는 혼란스런 상태에 이르고 있다.
학생 임상실습병원 운영의 문제점
의과대학이 부속병원을 두지 않고도 운영할 수 있게 된 근거는 대통령령인 대학설립ㆍ운영규정이다. 이 규정 제4조(교사) 2항에는 실습교육을 위해 부속병원을 직접 갖추거나 그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에 위탁하여 교육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여기서의 기준은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제1항에 따른 인턴과정 수련병원의 지정기준을 의미한다. 즉 현행 규정에 의하면 의과대학은 부속병원을 직접 갖추지 않더라도 인턴수련병원 이상의 병원과 협약하여 학생실습을 위탁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의대뿐 아니라 치대 및 한의대도 적용된다. 즉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학생 임상실습병원이 갖추어야 할 기준에 대한 독립적인 기준이 없고, 일반적으로 중소규모의 병원이라도 통과하기 어렵지 않은 인턴수련병원 지정기준을 아무런 교육적 근거없이 가져다 씀으로써 결과적으로 의과대학과 협약만 맺으면 전국의 수많은 인턴수련병원이 대학병원이 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있는 셈이며 그것이 실제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현실화된 것이다.
한편 이 문제와는 별개로 부속병원 및 협력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교수 신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0개 국립 의과대학의 경우는 서울대병원설치법 및 국립대학병원설치법에 따라 의과대학 교수들이 특수법인인 대학병원 의사를 겸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국립 의과대학의 경우는 교육부에 의해 임용 가능한 전임교수의 정원이 통제되는 데 반해, 소속병원 전부가 학교법인인 24개 사립 의과대학(관동대학교 의과대학 포함)은 부속병원의 수에 상관없이 병원 근무 전문의를 모두 전임교수로 임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따라서 부속병원의 수가 많은 일부 사립 의과대학의 경우 자연히 전임교수의 수도 늘어나 1,000명을 넘는 곳도 있다. 특히 1990년 이후 부속병원의 수가 급증하면서 의과대학 교수의 수도 따라서 증가하여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전임교수는 전체 대학교수의 15% 이상, 활동 중인 전체 의사 수의 10%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교수들이 모두 교수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 진료를 골고루 수행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진료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입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고, 결과적으로 임상실습을 포함한 학생교육의 질은 교수 수의 증가에 비례하여 향상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의료법인 병원을 협력병원으로 운영 중인 7개 사립의과대학이다. 2011년 11월 감사원은 울산대학교 의과대학과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을 포함한 7개 사립 의과대학의 14개 협력병원에 근무하는 의과대학 교수 1,818명을 전임교수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들의 계약을 해지하고 이들에게 지급된 사학연금 등 교비 약 607억 원을 환수하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통보하고 교육부는 이에 따른 행정처분을 2012년 2월에 내림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사립 의과대학 교원의 협력병원 의사 겸직을 인정한 사립학교법 개정안(2011. 12. 30. 국회본회의 가결, 2012. 1. 26. 공포, 2012. 7. 27. 시행)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개정법 실시 이전에 임용된 교수들에 대하여 울산공업학원(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성균관대학(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일송학원(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성광학원(차의과학대학교), 가천학원(가천의과학대학교) 등 학교법인 5곳이 “협력병원 겸직교수의 교원임용계약 해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이 서울행정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대량 해직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육부는 이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협력병원에 근무하는 겸직교수의 수를 (대학의 임상교육 필요 학생정원×1)+(전문대학원의 임상교육 필요 학생정원×2)+(일반대학원의 임상교육 필요 학생정원×1.5)로 제한하였다. 여기서 임상교육 필요 학생정원은 편제완성연도를 기준으로 학생정원 중 예과 1, 2학년을 제외한 정원(예과과정이 없는 경우에는 전체 정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정원으로 규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부속병원인 경우 임용할 수 있는 전임교수의 수에 제한이 없는 반면 협력병원은 학생정원에 연동되어 전임교수의 수가 제한되는 것이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는 매우 특수하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은 소수의 기초의학교수만 전임교수로 근무 중이며 임상의학교수는 없는 상태이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정확한 전임교수 수는 계속 바뀌고 있어 파악이 힘들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은 남광병원의 수련병원 자격이 취소되면서 학생 임상실습이 문제가 되자 전주예수병원과 협력병원 관계를 맺는다. 이때 협력병원인 전주예수병원은 다른 6개 사립 의과대학의 경우와는 달리 학교재단과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병원이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과 전주예수병원은 협약을 맺으면서 전주예수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80여 명을 서남대학교 전임교수로 무더기 임용을 했다. 이때 서남대학교 전임교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서남대학교에서 급여가 나와야 하는 관계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주예수병원이 80여 명 전문의의 급여를 서남대학교에 기부금의 형태로 보내면 서남대학교는 이를 월급으로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서남대학교 재단이 불안정한 관계로 전주예수병원은 협약된 기부금을 보내지 않았고 따라서 서남대학교에서 월급이 지급되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월급 지급을 근거로 80여 명 교수 임용자들을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옮기려던 계획이 실행되지 못했다. 2014년 교육부는 서남대학교 협력병원 실태를 조사할 때 이들 80여 명이 사학연금 가입이 되어 있지 않은 점을 들어 전임교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결과적으로 서남대학교에 신입생 모집 정지 처분을 내리게 되었다. 서남대학교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교수들을 사학연금에 가입시켰다. 현재 교육부는 전임교수 신분을 확인할 때 사학연금 가입자인지에 의존하여 판단한다. 즉 교육부는 자체적으로 전임교수의 자격기준이나 등록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며, 임용과정의 절차와 무관하게 대학교의 인사위원회를 통과하고 이사회 임용결의가 있었고 급여를 받은 내역만 있으면, 그래서 사학연금에 가입이 되어 있다면 전임교수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인천가톨릭학원으로 인수되기 전의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에서도 있었다. 당시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은 명지병원과의 협력병원 관계를 종결하면서 학생실습병원이 시급히 필요하니까 제일병원, 성애병원, 그리고 분당 제생병원 등과 연이어 협력병원 협약을 체결하고 이들 병원에 근무하던 전문의 200여 명에게 전임교수 임용을 하였다. 교수 임용을 위한 방법과 절차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와 동일하였다. 그리고 이들 전원은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이 인천가톨릭학원에 인수되면서 교수신분이 없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 절차인지, 적법한 처리인지 따져 볼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별다른 입장을 표시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묵인하고있는 인상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기본의학교육과정 중 임상교육에 관련하여 어떤 형태의 병원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자격을 갖춘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임상실습교육을 논할 때 병원의 규모나 병원의 법인격과 같이 병원의 자격을 따졌을 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임상실습을 시켜야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초래된 배경에는 일차적으로 교육부가 의학교육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대생의 임상실습을 공대생의 현장실습, 간호대생의 병원실습과 동일한 차원에서만 다루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보건의료인력 교육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 할 보건복지부 역시 졸업 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인 전공의 교육에만 제한적으로 관심을 가져왔을 뿐 기본의학교육과정은 자신들과 무관한 영역으로 무시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턴 수련병원, 레지던트 수련병원의 자격조건을 정하고 질 관리를 하면서도 학생 임상실습병원을 지정하고 질 관리하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의과대학, 특히 사립 의과대학은 대학병원이라는 명칭이 갖는 다양한 이점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속병원, 협력병원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갔고, 이에 따라 의과대학 교수의 수 역시 비례하여 증가해 갔다. 환자들의 대학병원 쏠림현상, 수련병원으로 지정되는 경우 값싼 노동력으로서 전공의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이점, 그리고 대학병원으로서 전문의들을 대학교수로 채용할 경우 급여나 처우가 상대적으로 낮아도 잘 이직하지 않는다는 장점, 더구나 교육용 재산이 아닌 수익재산으로서 부속병원, 혹은 협력병원을 운영하더라도 소속 의사들에게 교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 등에서 대학병원은 교육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환경 속에서 대형병원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 더 나아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의과대학 전임교수 중 상당수는 교수로서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더 나아가 학생교육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전혀 없거나 현실적으로 교육에 종사할 여건에 있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고 결과적으로 학생 임상실습교육의 질은 과거보다 오히려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및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의과대학과 특정 병원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약서만 가지고 스스로 교육협력병원을 칭하고 개개인에 대한 자격기준이나 심사 없이 소속 전문의 전부를 무더기 전임교수로 발령하여 교육을 맡기는 행태는 매우 우려할 만한 사태이며, 이를 제지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의과대학 신설과정에서 굳이 대형병원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실 의과대학이 난립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지리멸렬한 의과대학교육병원의 실태를 바로잡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학생 임상실습병원의 조건
임상실습병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소위 교육병원(academic medical center, 교육연구병원 또는 교학병원이라고도 함)의 개념이다. 이 개념에 의하면 법인격과 무관하게 어떤 특정 병원이 교육과 연구에 적합한 기준을 만족하고 있는지를 검증하여 기준을 통과한 병원에만 교육병원, 특히 학생교육병원(student teaching hospital)의 자격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교육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중에서 대학이 선별하여 전임교수를 임용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안은 학교법인, 특수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이 혼재되어 있는 우리 상황에서는 관행을 최대로 수용할 수 있고 부작용이나 저항이 가장 적은 안이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교학병원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다. 연구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연구중심병원이 바로 교육병원의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즉 병원 내에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연구전담교수를 두고 대학원 교육을 맡아하며 임상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병원이 명실상부한 교육병원 즉 academic medical center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교육병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병상 수도 많은 병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크고 임상연구능력이 뛰어난 병원이 학생 임상실습에 적합한 병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학생 수준의 임상실습은 1, 2차 병원이 지역사회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질병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즉 전공의들을 수련시키고 임상연구를 하기 위한 교육병원과 기본의학교육과정에서의 임상실습교육을 위한 교육병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생 임상실습병원을 논할 때 더욱 중요한 요소는 병원의 규모나 기타 하드웨어적 요소가 아니라 교육을 담당할 교수의 자격에 관한 사항들이라 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외형적으로 훌륭한 병원이라 할지라도 교수가 진료나 연구에 전념을 하느라 학생교육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다면 그 병원을 학생교육병원이라 부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대학 전임교수라는 직위가 교육을 목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권위 있게 보이고, 우수한 진료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남용되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특정병원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두 교수로 임용되는 체제에서 벗어나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처럼 교육과 연구에 투입하는 시간의 비율에 따라 전임교수와 비전임교수를 철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전체 근무시간의 최소 50% 이상 교육과 연구를 하는 의사만 전임교수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진료가 50% 이상인 의사는 동일병원에 근무한다 해도 비전임교수인 진료교수나 임상교수, 혹은 그 밖의 임의의 명칭으로 임용하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임교수 내에서도 트랙을 나누어 교육전담 전임교수, 연구전담 전임교수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의과대학에서 진료에 50% 이상을 투입시키지 않는 전임교수의 수를 200명 이상 확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자연히 전임교수 임용을 남용하여 교수로서의 정체성이 없거나 실제로 교수 역할을 수행하기 힘든 사람까지 의과대학 전임교수로 임용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고, 반대로 비전임교수들의 경우에는 진료에 전념하면 되므로 논문이나 교육의 부담 없이 근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의과대학은 필요하다면 전임교수를 1, 2차 병원에 파견 근무토록 하여 그곳에서 학생 실습을 담당하게 하거나, 반대로 1, 2차 병원 소속의 의사라 할지라도 전임교수 임용의 기준을 만족하고 임용 심사를 통과하면 의과대학 전임교수로 임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결 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학교육, 특히 임상교육은 소위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 거의 대부분의 임상실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일차진료의사 양성이라는 일반적인 의과대학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못했고, 오히려 지난 20여 년간 대학병원의 법인격이 다양해지고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면서 의과대학 교수의 수도 비례하여 급증하면서 임상실습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즉 임상실습병원이 많아지면서 한 대학의 학생이라할지라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분산되어 실습을 받고, 그러면서도 중앙에서 이를 관리하고 조절하는 기능이 따라가지 못해 학생들이 소위 기회적 학습(opportunistic learning)을 받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또한 교수의 수는 많아졌으나 그만큼 교육에 대한 책임감은 희박해지고, 물리적으로도 진료와 연구의 압박으로 교육에 투입할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일부 부실대학의 경우이긴 하지만 임의로 협력병원 관계를 맺은 병원에 학생실습을 떠넘기는 사태까지 초래되고 교육이나 연구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협력병원 의사들을 무더기로 전임교수에 임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와 같은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는 지금까지의 틀을 과감히 깨고 미래의 의료인력 양성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학병원 혹은 교육병원 지정기준을 잘 정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상업적 차원, 혹은 의료기관의 생존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대학병원 체계를 대신하여 교육과 연구라는 공익적 목적을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academic medical center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아니,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수인력체계의 정비이다. 즉 교육병원의 기준을 정하는 것 이상으로 전임교수 임용기준을 정해 실제로 교육과 연구의 능력을 갖추고 있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임교수가 되어 책임 있는 임상실습교육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병원과 대학교수가 지금과 같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남용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